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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Jun 10. 2024

할 말을 하는 연습

눈치 좀 그만 보고 할 말은 이제 하고 살자.

어느덧 초등학생 4학년이 된 딸이 일 년 간 다녔던 학원이 도움이 되질 않아서 학원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다른 학원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다니고 있는 태권도 학원 시간이 애매하여 도저히 시간표가 맞지를 않는다. 머리를 싸매다가 작년에 전화 문의만 했던 아파트 단지에 있는 공부방이 떠올랐다. 일 년 전에도 같은 고민으로 공부방에 전화했는데 전화 문의만으로도 기가 빨렸던 기억이 난다. 마치 전화 통화만으로 교감 선생님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상담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일 년 후 결국 이곳밖에 시간이 맞는 곳이 없어서 상담을 가보았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선생님..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 교육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중간 중간 하지 않아도 될 말씀도 하시는 게 조금 탐탁지 않았지만 그래도 태권도와 시간표 맞는 곳이 없어 공부방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공부방을 다닌 지 어느덧 6개월째.. 그동안 딸은 확실히 성적이 많이 올랐다. 선생님이 많이 열정적이시고 그래서 그런지 아이에게 혼도 자주 내시는 것 같았다. 딸은 나를 꼭 닮아서 마음이 많이 여리다. 시험을 한 개 틀려놓고 공부방 선생님께 혼날까 봐 무섭다고 걱정을 한다. 그 모습이 안쓰럽긴 하지만 너의 삶에서 친절하고 좋은 선생님만 만날 수는 없기에 아이를 타이르고는 계속 공부방에 보냈다. 딸은 공부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꽤 많이 해주는데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아이라서 좋았던 이야기 나빴던 이야기 골고루 한다. 딸을 통해 듣는 선생님의 이미지는 무척 꼼꼼하고 열정적이고 본인의 일에 완벽하신 것 같은데 기분대로 말을 좀 막 하시는 것 같았다. 전해 듣는 내내 내 마음도 불편했지만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아이도 태권도 학원을 계속 다니려면 공부방에 다녀야 하니 참고 다녔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아이 핸드폰이 전화가 안되어서 집에 있던 안 쓰는 핸드폰으로 유심을 옮겨 전화만 가능한 핸드폰을 들고 다녔다. 그런데 그날따라 선생님께서 수업을 카톡으로 해야 했었나 보다. 아이가 카톡이 안된다고 하자 카톡도 안 되는 핸드폰을 뭐 하러 들고 다니냐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순간 그동안 참고 넘겼던 것까지 떠오르면서 이건 선생님이 선을 넘으신 거라 생각이 들고 화가 솟구쳤다. 어찌나 화가 나는지 성적이고 뭐고 당장 공부방을 끊어버리고 싶었는데 하필 6월 초다. 벌써 하루치 수업을 듣고 왔다. 어찌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리며 두통이 올라왔다. 

이 선생님과는 어차피 말도 안 통할 것 같고 전화해서 말해봤자 도리어 나를 가르치려 들 것 같은 짐작이 든다. 그냥 사정이 있다고 하고 이번 달까지만 꾹 참고 아이에게 수업을 들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날 밤 생각해 보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할 말은 꼭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나는 할 말을 못 하고 그냥 끝내려고만 하고 있다. 어쩐지 부끄러웠다. 아이와 날 위해서 내일 전화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어김없이 운동을 하고 땀을 줄줄 흐르고 나니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아 당장 전화해야지.

언제까지 남의 기분만 생각하고 참고 살 수는 없다. 

게다가 나는 애가 둘이나 있는 엄마다.


집에 오자마자 대충 할 말을 정리하고 선생님께 통화를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선생님께 전화가 왔고 나는 첫마디를 바꿨다.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고요....라는 저자세 같은 말을 빼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고 전화를 한 목적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어제 아이가 핸드폰 카톡이 안 돼서 혼났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물어보았다. 선생님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지만 곧 내가 아이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되물어보며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고 들었다고 확인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한 적 전혀 없다고 하셨지만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 예상했다. 그 말은 선생님이 확실히 선을 넘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가 집에서 이렇게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말을 돌리며 한참을 교육 얘기와 우리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잠잠히 듣고 있었다. 다 듣고 난 후 나의 생각을 말씀드렸다. 물론 선생님께서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점에 대해 너무 감사드리고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그동안 내가 느낀 점, 아이가 마음이 여려서 상처를 받는다는 점, 선생님께서 강조하시려고 내는 큰 목소리가 듣는 아이는 혼이 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들을 다 말씀드리고 서로 좋게 마무리를 했다. 


할 말을 하고 보니 별 일이 아니다. 말 못 하고 속을 끓이면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표현을 하고 나면 별 일이 아닌 게 된다. 그동안 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속상할까라는 생각부터 했고 불편한 대화가 너무 싫어서 피하고만 싶었다. 그러다가 참다 참다 뻥 하고 터트리며 살아왔다.  

사실 공부방을 끊으면 손해 볼 사람은 내가 아닌 선생님이다. 그런데 내가 뭐가 겁나서 이깟 전화를 못하고 있었는지.... 내 성격상 평화주의자로 살고 싶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불편한 상황을 마주할 때가 찾아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점은 내 아이가 보고 있다. 나를 보고 그대로 배워버리는 나의 소중한 아이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불편하지만 내 아이를 위해 할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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