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0대 1의 문턱
2005년, 긴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한국은 생각보다 더 취업하기 힘들어 보였다. IMF의 상흔은 지워진 듯 보였으나, 사회는 치열한 무한 경쟁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소위 '스펙'이라는 단어가 취업 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높은 토익 점수, 제2 외국어 능력, 높은 학점과 유명 학교 졸업장, 인턴 경력 등 스펙이 없으면, 취업하기 힘든 시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거대한 취업 시장에 몸을 던졌다.
30여 곳에 달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장을 전전했다. 지금처럼 ‘단군 이래 최악의 취업난’이라는 말이 일상화된 시대는 아니었지만, 이름 좀 들어본 기업의 경쟁률은 기본적으로 100:1을 상회했다. 서류 전형 합격 문자 하나에 일희일비하고,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진땀을 흘리던 날들이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었고, 2006년 1월, 나는 한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당당히 첫발을 내디뎠다.
'멋진 자동차' 대신 선택한 '중국 펀드'
꿈에 그리던 첫 월급날,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명품 쇼핑도, 자동차 계약도 아니었다. 나는 곧장 증권사로 달려가 ‘중국 투자 펀드’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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