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람에게 치였다고 해야하나. 캐어를 포기했다고 해야하나.
2017년 5월의 나는 주변의 사람들과 멀어지기 위해 호주로 떠났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 필요가치를 느끼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두가지 감정이 들었다.
"무서움"
더 이상 내 주변에 남는 사람이 없고, 날 응원해줄 사람이 더 이상 없게 되면 난 어떡하지?
또 하나는 "공허함"
그 허기가 가득한 맘 속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끊임없이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밑 빠진 독이 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아무튼 호주에 도착한 나는 무언가 새로이 출발하는 기분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너무 많은 크레파스 색을 이용해서 거의 까맣게 칠해져가는 스케치북을 뜯어버리고 새로운 스케치북을 가져온 느낌이었다.
그곳에 도착해서 나를 계속 곱씹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결론은 나는 지나가는 모든 것들에 애착을 품고 있었다.
사람관계도, 일도, 나 스스로 까지. 애착을 가지는 게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렇게 욕심을 줄이고 내려 놓으면 모든 걸 다 품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발악들이 내려놓으려는 자세보단 모든 걸 취하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연과의 관계는 더더욱 내려놔야 할 상황을 알지 못하고 끙끙거리기 바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을텐데, 내가 잘못했고 좀 더 노력하지 않았다면서 나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결코 옳지 못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마음은 따로 놀기 바빴다. 착한 사람이 되려고 보여주기 급급했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종종 혼자가 되는 꿈을 꾸면서 무서워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없는 우주에 갖힌 꿈이었다. 내 몸도 내 스스로 가누지 못하는 몸동작을 취하면서 아무 소리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캄캄함이 계속 되다가 꿈에서 깨곤했다. 항상 그 꿈을 꾸고 깨면 엄마에게 달려가 소리쳤었다.
"엄마, 나 혼자 있는거 아니지?"
엄마에게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들이다. 그런 엄마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무서운 꿈 꿨니? 어여자. 내일 아침에 피곤할라."
엄마의 진심어린 위로가 아닌 그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꾸 혼자가 되려는 아이러니가 있다.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오는 게 불편했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은 되고 싶은 "착한놈"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정의부터가 달랐던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날리가.
사람들은 내 친절에 의문을 가지고 되려 거짓된 위선이라는 평까지 받게 되었다. 진정 마음을 쓰려고 노력했던 마음들이 내게 돌멩이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검은 마음들을 추수리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끝까지 사람들이 낯설고 불편해하는 애정결핍주의자인지도.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먼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지 않나. 정작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려고 애쓰면서 내가 사랑받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니. 아니 오히려 거부하고 내가 주는 사랑만 받으라고 고집부리는 경우가 된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일이 이리 어려울 수가 있을까.
그래서 감정을 잘 받고 그것들을 잘 기억하고 소화해내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런 이성의 사람들을 만났다. 자존감이 높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나는 그들이 쉽게 그런 마음들을 받고 잘 넘기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 마저 얘기하는 것들은 이러했다.
"나도 쉽진 않아. 그냥 받는 거지."
'그냥'이라는 단어가 내게 그리도 어려워서 어떻게하면 쉽게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는데, 쉽지 않다니. 내겐 정말 충격적인 솔직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무기는 솔직함이었다. 나는 그 무기를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나는 솔직함에 대한 테마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언변의 솔직함인지 감정의 솔직함인지 모호한 깨달음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답은 날 먼저 알아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을 배워보려고 한다. 인문학을 배우고 다시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