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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루루루 Jul 07. 2020

소설 <빅파파> 리뷰

불평등한 세상을 향해 휘두르는 한 방의 써커 펀치

일곱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던 홍길동의 비극을 안 후에야, 보통 사람들은 아버지라는 존재를 정말이지 낯간지럽게 '아버지' 혹은 '아빠'라고 부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고치원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

홍길동전처럼 서자였거나 아니면 다른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 때문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해서, 아버지 노릇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그런 용어에 익숙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인 소설이라면 아버지가 없어서 겪었던 서러움, 불행에 대해 다루겠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결말에서 화해하고 아버지라고 부르는 뻔한 클리쉐 따윈 없다.


 내면에 내재된 부재 때문일까.

나는 이 주인공이 본인의 불행을 다룰 때도 너무나 담담하게 말할 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종합격투기 경기 도중 일어난 사고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을 때도

'사고를 피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보다

'쓰러지기 전에 주먹 몇 방이라도 더 날려야 했을 텐데'라고 후회한다.


이 소설은 쓰러지기 전에 못 날린 '주먹 몇 방'의 이야기다.

사고로 다리를 못쓰게 된 전직 복싱 선수가 과연 '주먹 몇 방'을 날릴 수 있을까?



경기가 시작되기 전, 레퍼리는 두 선수를 마주 보게 하고 이것저것 설명을 한다. 뭐 후두부나 급소 가격, 팔꿈치 공격을 금지한다는 뻔하고 뻔한 이야기다. 중요한 건 그 후에 외치는 소리다. "세컨드 아웃!" 선수를 코칭하는 관장이나 코치들에게 이제 너희들이 할 몫은 끝났으니 링 밖으로 꺼지라는 말이다.


 복싱엔 세컨드라는 용어가 있다. 선수를 코칭하는 관장이나 코치들을 말한다.

경기가 시작되면 '세컨드 아웃'을 통해 선수를 제외한 사람은 전부 빠진다.

그러나 세컨드 아웃 이후에 선수들의 고독한 싸움은 시작되지 않는다.

경기가 시작되어도 세컨드는 시시각각 선수에게 목청껏 소리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고치원'에겐 이 세컨드가 없다.

세컨드가 없는 채로 링 위에서 싸워왔다.  철저히 혼자인 링


아이러니하게도 다리가 마비되고 휠체어 신세가 되었을 때 그때서야 세컨드가 생긴다.

안타까운 건 이 세컨드가 그 아빠라는 존재다. 아빠라고 불러본 적도 없는..


이 작품은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는 존재 '빅 파파'와 사고로 두 다리가 망가진 '복싱 선수'의 이야기다.

부자 같지 않은 부자가 휴머니즘 다큐 연출을 위해 억지로 친한 척하는 이야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이야기다.


나 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는 건

그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날리지 못했던 '펀치 몇 방'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라운드가 끝나고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모든 라운드가 종료되고 경기가 끝난 후 무방비 상태의 선수에게 가하는,

규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공격인,

'써커 펀치'가 있다.


이들의 '써커 펀치'는 적중할지.

소설을 통해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빅파파>를 쓴 최재영 작가는 젊은 신인 소설가이다.

거친 문체와 담담한 서술, 특히 냄새의 실감나는 묘사 덕분에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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