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기록해둔 문서가 사라진다면?
부질없는 가정 하나 해보자
* 어느 날 갑자기 법을 기록해둔 문서가 사라진다면?
한 도둑이 법이 너무나 싫어 어느 날 문서보관서에 몰래 들어가 우리나라 모든 '법'의 원본 문서를 훔쳐 불태워버렸다. 과연 이 도둑이 훔쳐 태워버린 것이 '법'이었을까?
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곧 문서보관소의 법문서를 잘 지킨다는 말인가?
정부는 도둑이 없애버린 그 '법'없이도 공권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여차하면 나중에 관습법을 원용하거나 소급입법을 적용해서 기어이 법질서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구소련의 법학자 파슈카니스는 추상적 법규범이 먼저가 아니라 기득권적 사실관계 = 구체적 법률관계가 먼저라고 주장했다. 법규범이란 추상적인 문학적 창조의 영역이라 말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의 상품소유, 교환 관계가 먼저다. 즉 기득권적 사실관계를 이차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법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문자를 훔치는 것으로 훔칠 수 없다. 왜냐면 그 추상적 문자를 만들어낸 근원은
기득권적 사실관계 = 구체적 법률관계 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이 처럼 사례를 들어 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위에 서술한 파트는 제일 첫 장에 나오는 것으로 법이 문서로서 존재하며 모든 것을 총괄하는 절대적인 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책 전반부에 걸쳐 법의 한계를 설명한다. 영원히 불변하는 실정법이 아니라 역사적 한계 속에 변화하는 정의라 말한다.
* 공소시효는 왜 있는가?
1) 법적 안정성
– 범죄인이 처벌받지 않고 다른 생활관계를 영위하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새로운 생활관계의 안정성을 확정해주는 것이 사회적 안정에 기여한다. 예를 들어 강간범이 용케 법망을 피해 아들, 딸 낳고 잘 살다가 40년이 지나 감옥에 가면 아무 죄 없는 그의 새로운 가정은 큰 피해를 입는다.
즉 법은 기득권적 안정성을 중시한다.
2) 수사의 실효성
- 시간이 오래 경과하면 여러 가지로 증거수집이 어려워서 수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3) 도피생활 동안 스스로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은 셈
- 스스로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은 셈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책에는 3가지 이유로 공소시효의 존재를 설명한다. 하나 이 의견은 대개 반박이 가능한 의견이다. 특히 3번의 경우 그렇지 않은 범죄인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시간이 약이 되는 건 아니라는 반박도 나온다.
이를 저자도 설명한다. 저자는 공소시효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서 법을 옹호하지 않는다. 법이 가진 현실적인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1번의 법적 안정성, 즉 기득권적 안정성을 중시한다는 생각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소시효가 아니더라도 법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진실'과 관계없이 현재의 사실 상태를 인정하거나 확정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신성한 하늘의 섭리로 강림한 건 아니다. 시효제도의 조화를 찾는 것은 전적으로 사회의 몫이다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 영화의 한 장면일 수도 있고 실제상황일 수도 있다.
우범지역의 거리에서 한 흑인 소년이 걷고 있다. 순찰차에서 내린 두 경찰이 그 흑인 소년을 향해 다가간다. 그 경찰은 단순히 참고 증언을 위해 그 소년을 향해 다가갔을 뿐이지만 소년은 도망가기 시작한다. 경찰은 도망가는 소년을 쫓는다. 경찰과 소년 사이에 격투가 일어나고 경찰이 쏜 총에 흑인 소년은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소년이 처음부터 죄가 있어 도망가기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 아무 죄도 없는 소년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죄가 없다면 도망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사람들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소년이 살아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죄가 없더라도, 당신이 날 죄가 있다고 잡아가면 난 죄 있는 사람이 된다."
법철학자 한스 켈젠은 '살인자가 살인자인 것은 법이 살인자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법이 내린 규정을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들다.
법정이 판단한 진실은 모두 법정의 진실일 뿐 진정한 사실관계는 아무도 모른다.
책에는 위와 같은 사례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례가 서술되어 있다.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 덕분에 흥미 있게 읽을 수 있고, 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법의 역사, 법실증주의, 로크, 홉스 등의 이론 등은 '법을 보는 법'이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결국 법을 보는 눈은 법 밖을 보는 눈에 의해서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을 보는 법’이다.라고 말한 작가의 맺음말이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