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은 연기가 필요할 뿐
'9시 출근이면 몇 시까지 회사에 도착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이 왜 그렇게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에너지가 넘쳐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인가 싶어 조금 부럽기도 하다. 그럴 시간에 일을 하든가 잠을 자든가 놀든가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이 뒤죽박죽인 우리 회사에 조금 늦었다고 눈치 주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이지만 40분을 내달려야 회사에 도착하는 나는 종종 지각을 했다. 특히 차가 막히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잦았다. 그래서 종종 지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늦게 가기 때문일까. 회사에서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주기적으로 환기를 시켜주는 정도였다.
지금 나는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한다. 5시에 잠에서 깨어 6시 정도면 회사에 도착한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퇴근 시간도 그대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Rule을 들이밀면 9시 정각에 일을 시작할 수 있으면 된다. 싸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한쪽이 Rule을 들이밀면 다른 쪽도 같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뉴턴의 작용/반작용은 언제나 유효하다. 치사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만큼 명확한 건 없다. 8시간 근무시간 준수를 가지고 나온다. 쉬는 시간까지 소환된다. 심하면 똥 싸러 가는 것도 언급된다.
토론이야 원리 원칙대로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진흙탕이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다. 실수는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리고 홀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입장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무엇보다 9시 딱 맞춰 출근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출근하는 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쓰나미가 쳐도 9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싸우려 들면 얼마든지 치사해질 수 있다. 그러면 모두에게 좋지 않다.
내가 보기엔 그냥 어그로를 끄는 질문 같다. 클릭을 유효하는 언론의 행태. 조금 일찍 출근할 수도 있고 조금 늦게 퇴근할 수도 있다. 반대로 조금 늦게 출근하고 조금 일찍 퇴근할 수도 있다. 업무시간에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잠깐 다녀올 수도 있다. 근무시간으로 말이 많아지니 어느 회사는 출근을 하던 놀든 무조건 하루 8시간만 채우라고 하는 곳도 생겼다. 피차 깔끔해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자리에 앉아 있는다고 다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 외국처럼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면 좋을까? 알아서 일하고 성과만 가져와라. 미국에서 근무하셨던 분의 얘기를 들으니 그 빡빡함에 혀를 내두를 것 같다.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능력주의가 그것인 듯했다. 알아서 일해라 못하면 아웃이다. 사실 심플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출퇴근 시간은 약속이다. 직원과 회사는 서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배려할 수도 있고 그 배려에 감사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회사와 직원의 신뢰가 중요하다.
이 질문의 출발은 아마 기업의 착취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출발했을 거다. 일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일을 많이 해서 더 많은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원하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많이 시키고 적게 주려다 사달이 난 것 같다.
회사는 돈을 많이 받을수록 근태가 나빠지는 것 같다(모드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돈 값 못하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는 생각해 볼 문제다.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임원과 사장을 보면 내적 분노가 생기기도 하지만 또 성과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근태가 명확하지 않아도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증명하면서 직원의 근태에 마이크로미터를 들이대는 건 모순 같다.
내가 일찍 출근하게 된 이유는 그저 아침 시간을 잘 쓰기 위함이었다. 일찍 출근하면 좋은 점이 많다. 일단 차가 막힐 일이 없다. 아침엔 머리가 잘 도는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른 스케줄 때문에 틀어질 일이 없다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좋은 건 아이와 함께 일찍 잘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유대를 위해서? 그런 건 사실 별 의미 없다. 회사에서 좋은 사람은 일 잘 해내는 사람이고 현자는 자기 일을 다해놓고 남의 일도 살펴주는 사람일 뿐이다. 가장 나쁜 사람은 자기 일 못 해내면서 남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이다. 너무 모난 성격만 아니라면 일만 잘해도 인간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
근무시간보다 빨리 일하는 것이 그렇게 억울하다면 정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된다. 회사에 나와 있다는 것 자체가 일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일은 근무 시간이 되어야 시작한다. 하지만 회사는 6시에 나온다. 조금 일찍 나와 내 공부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근무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사실 언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자기 좋은 일 하면서 좋은 인상도 남길 수 있다.
회사에서 '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그래도 퇴근은 일찍 하고 싶다.
*** 그러고 보면 이것도 철 지난 얘기다(작년 12월 글을 재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