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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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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곰씨 오만가치 Jul 26. 2024

잠깐의 행복

엄마 생일을 축하할 수 있었어

  담당 교수님은 회진을 마치고 퇴원을 해도 좋다고 했다. 며칠 있지 않았지만 그동안 쌓인  짐들이 많았다. 딸과 나는 무거운 짐을 먼저 차로 옮겼다. 나머지는 아내가 가져오기로 했다. 퇴원 수납이 필요했기 때문에 짐을 차에 싣고 원무과로 향했다. 담당자가 없어서 가퇴원으로 진행했다. 넉넉하게 결제해 두면 담당자가 출근 한 뒤 정산을 진행해 준다고 했다.


  우선 200만 원을 결제 두었다. 앞으로 나갈 병원비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들었다. 크론은 희귀 난치병이라 보험공단에서 지원해 10%만 내면 된다. 게다가 어린이의 경우 5%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MRI와 같은 비급여 진료는 어쩔 수 없다. 


  원무과에서 정신없이 움직여서 그랬을까 퇴원한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약을 받으러 간 아내와 중간에서 만나 차로 바도 이동했다. 짐을 가득 실은 차는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온 집이 낯설었을까. 아들은 잠시 신기해하더니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이상한 수학책>에서 배운 게임을 하자고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브루마블 게임도 했다. 

 

  자전거가 타고 싶다 해서 자전거를 타러 갔다. 오랜 시간 입원했던 아이가 대견해서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전거는 타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집 앞이나 한 바퀴 돌았어야 했다. 집 앞 강변 자전거도로를 기분 좋게 질주했다. 오르막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한 아이의 말만 믿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없었을 텐데. 부모로서 너무 들떠 있었던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너무 힘들어했다. 토할 거 같다고 해서 자주 가는 카페 앞에 앉아 쉬기로 했다. 그리고 아들은 그 자리에서 토하기 시작했다. 먹은 거라곤 경장식 밖에 없어 물만 흘러내렸지만 당황스러웠다. 화장실도 가고 싶다 해서 힘겹게 카페에 들어갔다. 그냥 쓰기 미안해 커피를 한잔 시켰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들은 카페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하얗게 질려버렸던 입술색도 조금 돌아왔다. 그때 변 색을 왜 확인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후회된다.


  그렇다고 계속 카페에 있을 순 없었다. 집에 가서 쉬게 해야 했다. 자전거는 카페에 묶어두고 아들을 엎고 집으로 향했다. 아직은 엎을만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온 아내에게 아들을 넘겨주고 자전거를 가질로 카페로 향했다.


  자전거를 가져오니 아들은 혈색이 돌아왔다. 그래서 양치를 시켜고 일찍 재우려 했는데 칫솔이 보이질 않았다. 가방을 병원에 두고 온 것이다. 퇴원한 지는 벌써 열한 시간이 지났다. 아내는 아들을 재우기로 하고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모두가 퇴원한 병원 원무과 앞 의자에는 까만 롱패딩이 걸려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아들 것이었다. 그리고 두고 온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속으로 외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내의 생일을 챙겨준다며 처제가 놀러 왔다. 우린 일상으로 돌아온 듯했다. 경장식만 잘하면 모든 게 좋아질 것 같았다. 일반식을 먹을 날을 상상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날 혈변을 봤다. 


  아내의 생일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짐을 싸서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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