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야 하는 걸 망각하는 부모
아들의 내시경 결과는 괜찮았다. 위도 깨끗했고 대장도 나쁘지 않았다. 크론은 대부분 회장부위에 많이 생기는데 그 직전까지 별 탈이 없어 보였기에 교수님도 초중기라고 생각했다. 소장에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캡슐 내시경을 하는데 아이가 어려 삼킬 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인 것 같다. 캡슐내시경은 장이 좁은 어린아이는 중간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소장 내시경이 있는데 쉽지 않은 검사라 확신이 없다면 보통 진행하지 않는다.
소장 쪽에 궤양이 깊어 출혈이 난 것이라고 판단하고 스테로이드를 쓰기로 했다. 아들은 링거를 꼽는 과정에서 한 번 잘못 꼽아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아팠다. 안 그래도 작은 팔 여기저기 주사 바늘 자국이 많았는데 그런 얘길 무덤덤하게 하니 속상했다. 그런 일을 해낸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겠다는 아들을 보며 역시 어린아이 답다고 생각했지만 대단하다란 생각도 들었다.
스테로이드가 효과가 있었을까. 혈변은 점차 사라져 갔다. 변은 담즙색인 녹색으로 변해갔다. 토요일 태권도 승품 심사가 있었기에 아들은 내심 기대했다. 교수님도 크게 말리지 않았다. 크론병 환자 중에는 혈변을 심하게 하는 경우가 그다지 없는 것 같았다. 이제 토요일 외출일지 퇴원일지의 문제였다.
토요일 퇴원하기로 결정했다. 아침에 외출해서 태권도 승품 심사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퇴원하는 일정이었다. 아침 일찍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긴장했더니 잠을 설쳤다. 그대로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한번 겪었으면서도 또 들떠 버렸다. 사람은 쉽게 망각한다.
태권도 승품은 팬데믹 때에는 각 도장에서 진행했었는데 이제 실내 체육관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아들은 오랜만에 본 형들과 동생 덕분에 신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걱정이 되었다. 행사는 생각보다 길었고 추운 바닥을 맨발로 뛰었다. 발차기는 그렇다고 쳐도 대련은 걱정스러웠다.
그런 걱정도 잠시, 보름 넓게 태권도 연습을 못했는데도 누구보다 절도 있게 품세를 하고 있는 아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새끼여서 그런지 몰라도 더 멋있어 보였다. 가족들 걱정하지 말라며 가족 밴드에도 동영상을 올렸다. 무사히 승품 심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머지 수납을 마치고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수치가 괜찮아서 추가적인 수혈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다시 주사 바늘을 꽂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모두 피곤함에 쓰러졌다. 하지만 꿀잠을 잔 우리에게 닥친 건 심해진 혈변이었다. 심상치 않은 양이었다. 교수님께 연락하니 응급으로 입원하라고 하셨다. 교수님도 병원으로 오신다고 했다. 11시가 넘어 응급 수속을 밟고 응급입원을 했다. 괜찮아지겠지라며 서로를 토닥거렸다. 아들과 아내를 병실에 두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음 날 이것저것 먹을 것을 싸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들이 보고 싶다는 책도 교보문고에 들러 샀다. 기쁘게 인사를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좋아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