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수난시대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조직을 정리해 보자"
의욕이 넘치는 상사는 언제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리더가 너무 낙천적이면 팔로워들이 정신을 못 차린다. 뭐든 도전하고 깨져보는 건 좋은 것이지만 우선순위 정도는 있어야 한다. 무기력증으로 같이 흘러가든지 깡으로 버티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회사 분위기는 점점 좋아지지 않는다.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려나. 많은 사람들이 떠났고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하루 종일 앉아 뭘 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내 마음도 어수선하다. 여기저기 돈, 돈 거리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듯하다.
기업에서 '이익'이라는 건 산소와 같아서 없으면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피터 드러커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숨만 쉬고 살 수는 없다고. 그리고 예전처럼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는 생각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생사고락이라는 말은 잊힌 지 오래다. 능력이 있으면 떠나면 된다. 그냥 회사에 좋은 기억이 남은 사람과 갈 때 없는 사람만 회사에 남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인데, 제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지금 성공해도 문제야. 할 사람이 없는 걸..."
사람이 없다고 말하긴 그렇다. 머릿수는 많으니까. 떠나간 자리에 누군가 채워져 있긴 하다. 어리숙한 신입 사원이나 아직은 적응하지 못한 경력 사원들이다. 인건비를 줄인다며 대량 해고를 하고선 인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템을 줄이지 못했으니 사람을 줄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숙련공이 나가고 미숙련공만 가득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머릿수만 세는 사람들은 "사람 많은데 왜 사람 없다는 소릴 하냐"라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돈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사람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팀장을 겸하면 안 될 거 같아"
실장은 그렇게 말했다. 나도 사실 직책을 겸한다는 건 인사의 게으름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하나 제대로 챙길 수 없는 게 겸직이니까 말이다. 팀 하나 관리하기 어려운데 여러 팀을 관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다시 팀장으로 복귀하네?"
지나가던 다른 팀 팀장이 말을 건다.
"네?"
"그 뭐더라.. 그쪽 팀장이던데? 몰랐어? 나는 알고 있는지 알았지"
"어.. 그냥 본인이 겸직하면 안 되겠다는 말만 하시던데요?"
내가 둔한 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건지. 내 앞에서 겸직하면 안 되겠다는 소리는 네가 팀장해라는 얘기로 충분히 해석될 소지가 있는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짬이 많은 사람도 있었는데, 팀장이 하기 싫어서 퇴사 카드 써 가며 부서를 옮겼는데.. 또 팀장이라니.. 슬픈 예감은 언제나 비껴가지 않는다.
"다른 부장님도 계신데.. 집에 갈까"
혼자 푸념을 해 본다. 그리고 발표된 조직도. 나의 이름은 팀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3년 만의 팀장 복귀. 회사 분위기는 100배 안 좋아진 상태. 인사에 무관심한 경영진. 이 자리를 꼭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은 팀장이 되길 원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자리가 엄청 좋은 회사들도 많을 거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리고 여기서는 아닌 것 같다.
나에게 팀장은 단순히 커리어 단절을 의미한다. 기술직에서 관리직으로 이동은 분명 다른 커리어의 시작이다. 하지만 매니지먼트라는 기술을 익히기에 적어도 여기는 부적합하다. 팀장 패싱은 밥먹듯이 이뤄지고 문서 작성과 욕받이가 전부인 자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그렇다고 회사에 목줄 맨 충견이 되고 싶지도 않다.
팀장은 위아래로 눈치 보고 핍박받는 그저 하나의 병일뿐이다(성격이 이래서는 팀장 실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