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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 아웃 (Bore-out)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

by 느곰씨 오만가치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온다. 그건 사실 직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떤 일이든 오래 하게 되면 슬럼프가 온다. 나는 그것을 의지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아니면 열악한 환경에 의한 체력 방전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새로운 단어를 알았다. '보어 아웃'. 더 이상 성장을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라는 말이다.


우리 뇌는 참 재미나다. 깊은 사고를 하기 싫어서 시스템 1을 이용하여 패턴을 짠 뒤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뇌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비효율적 기관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끼려고 이런 패턴을 짜 놓는다. 그래서 오랜 생각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의 직관은 꽤 유용하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 뇌는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지겨움을 쉽게 느낀다는 것이다. 인지와 활동의 영역에서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고나 할까.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우리 뇌는 일을 싫어한다. 실제로 fMRI로 촬영을 해봐도 싫어함이 표현된다고 한다. 일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건 '착각'이거나 '정신착란'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일이 재미있을 때가 있다. 바로 '성장'을 느낄 때다.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은 이 지겨움을 이겨내게 해 준다. 변화는 행복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성장은 행복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갓 입사하여 조금씩 일을 알아가기 시작할 때, 뭔가 비중 있는 일을 맡기 시작할 때, 일은 즐거울 수 있다. 자신이 성장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운동을 포함한 여러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시작한 초기에는 배울 것도 많고 실력도 잘 는다. 매일이 재밌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면 실력 향상이 더뎌지기 시작한다.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투자해야 할 노력의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꼭 슬럼프가 오게 된다.


게임이라고 다르지 않다. 게임할 때의 우리 뇌의 상태를 fMRI로 찍으면 일할 때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게임이 즐거운 건 성장이 숫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레벨업이 쉬운 초반엔 더더욱 즐겁고 일정 레벨 이상이 되어도 다음 레벨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숫자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견딜만하다. 하지만 그런 게임도 일정 이상의 레벨이 되면 '내가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단조롭고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 의욕이 상실되는 것을 '보어 아웃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현재 하고 있는 것의 의미와 목적을 체감하지 못할 때 경험하는 심리적 상태인 것이다. 이런 무기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인간은 방어 기제를 작동한다. 업무 시간에 쇼핑이나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외적으로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무기력한 태도는 동료에게 전염되고 조직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또 다른 무기력한 상태가 있는데 바로 '브라운 아웃'이다. 이는 보어 아웃과 비슷하기는 한데 과도한 업무나, 단조로운 반복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모두 작동한다는 점만 다르다. 때론 번아웃으로 아니면 보어아웃으로 변하기 쉽다.


브라운 아웃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서서히 본인과 동료 그리고 팀 전체로 전염되는데 조직이 이런 신호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면 목표 달성도 어렵고 생산성 마저 떨어지고 만다.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돌리는 번아웃과 달리 보어 아웃은 그 화살이 회사로 향할 수 있다. '해도 안돼~'라고 말하는 선배 사원의 대부분은 보어 아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장하지 못한다는 경험은 그대로 고착되며 변화를 귀찮아하며 격렬하게 저항하게 된다.


커리어가 쌓일수록 주위의 일을 해봐야 한다. 귀찮고 번잡스럽더라도 외현을 넓혀가야 한다. 그런 소소한 성장을 겪어야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받은 만큼만 일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성장을 막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성장해서 더 나은 환경으로 점프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성장과 결단 그리고 실행력이 필요하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뭐라도 해보자. 주저앉아 있기엔 세상엔 할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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