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
풀어져 버린 신발 끈. 별거 아닌 일 같은 이 상황이 정말 곤란할 때가 있다. 그냥 무릎을 굽히고 앉아 무심코 묶으면 된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신발 끈을 매는 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상황은 늘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 어렵지 않은 일이 너무 어려울 때가 있다.
다리가 다쳤을 수도 있고 살이 너무 쪄서 신발에 손이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발 끈을 어떻게 묶는지 모를 수도 있다. 달리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보통은 쉬운 이 일이 너무 어려울 때가 분명 있다.
때론 누군가가 대신 매어줘야 할 때도 있고 때론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다. 끈이 풀려 버린 신발만큼 불편한 순간이 있다. 무심코 다가가 다시 매면 아무 일도 아닐 때가 많다. 하지만 몸이 마음이 그러지 못할 때가 분명 존재한다. 고쳐 매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
인연을 다시 엮으려면 잠시 멈출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누군가가 대신 매 줘야 할 때도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된다면 고독은 자신을 삼켜 버리지 않을까. 나카시마 미카는 그런 고독의 절정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은 죽음에 대한 얘기라기보다 죽을 만큼 고독한 상황을 얘기한다. 가사는 모두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어쩌면 대표곡 <눈의 꽃> 보다 이 노래가 더 많이 회자되는 것은 현대인의 고독이 얼마나 깊은지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僕が死のうと思ったのは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것은
靴紐が解けたから
구두끈이 풀렸기 때문이야
結びなおすのは苦手なんだよ
다시 묶는 건 어려워
人との繋がりもまた然り
사람과의 인연도 마찬가지
누구에게는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 누구에게는 절박할 수 있다.
그저 신발 끈을 묶어줄 사람만 있었다면
그저 잠시 멈출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
고독에 삼켜지는 슬픔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