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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끌어당기는 인천이라는 허브(2)




차이나타운이 속한 개항동을 런던 북부 라임하우스라고 치면, 결대로 나 있는 길을 관성에 이끌려 온 해안동은 쇼디치나 해크니 정도와 비유할 수 있었다. 런던 해크니에 방문했던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유독 페인트나 그라피티 아트로 외벽을 칠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흰색과 파란색이 병치된 외벽은 라거 맥주의 시원함을 말해주듯, 개항로 라거가 <인천 브루어리>의 시그니처 맥주다. 맥주에 새긴 상호명 폰트와 인쇄한 포스터 모두 기획이 파격적이다. 포스터 속 남성에서 야수성을 끌어냈고, 병에 새간 폰트에서 진취적 기상이 표현됐다. 개항로 맥주는 개항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한 맥주로 인천 개항로 상권의 부활을 위해 인천 지역에서만 판매, 음용할 수 있었다. 맥주의 플레이버는 여느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와는 달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성에 방점을 찍었다. 브루어리에 들어가 맥주 한 병을 사서 나왔다. 입구 앞 간이 테이블에 앉아 거리뷰를 안주 삼아 병째 기울였다. 목구멍이 살짝 타들어갈 정도의 청량감이 노곤한 자아를 깨웠다. 이것이 인천의 맛이구나. 바로 옆 신포시장의 닭강정을 부르는 맛이기도 했다.   



       




인천 브루어리에서 생산하는 개항로 라거와 포스터

          


“가서 닭강정 사 와!” 인천에 간다고 밝히면 습관적으로 듣는 말이다. 마치 잘 다녀오라는 뜻의 인사말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특수 구전마케팅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회적 분석도 가능하다. 그만큼 <신포국제시장>은 인천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인천은 개항장이어서 약 100년 전부터 다국적 상인들이 섞여 지냈다. 신포시장은 일본인들에게 채소를 팔던 중국인 점포들이 모여 형성된 상권이다. 신포시장에 ‘국제’가 붙은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신포국제시장의 히트 상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양한 먹거리 상점이 벨트를 이뤄 대부분의 취향을 섭렵하였기 때문에 시장 속 손님들의 성별과 연령층은 넓은 편이다. 그중에 신포국제시장 양옆 상권은 항상 인산인해다. 마치 꼬투리가 튀어나온 김밥의 원형처럼 신포시장 출입구 앞은 가장 웨이팅 손님이 많았다. 서편 끝에는 ‘산동 만두 공갈빵’이, 동편 끝에는 ‘신포 닭강정’이 해당 상점이다. 시장을 찾아온 모임 구성원들이 구매를 희망하는 가게 앞에서 전략적으로 나눠 기다리는 게 이 시장에서 통하는 소비자들의 사회적 합의다. 신포국제시장은 쫄면의 태동을 알렸던 곳이기도 하다. 40년 전통의 순댓국, 막 찜통에서 나온 찐빵, 시장 거리에 나온 팥죽뿐만 아니라 각종 부재료로 만든 엿, 마카롱, 에그 타르트와 같은 디저트까지 라인업이 탄탄하다. 약육강식의 구조가 아닌 서로 성장하여 공간의 시너지를 나눠 갖는 형태의 장터 모습이었다.     


      





신포시장 만두가게 앞에 줄 서 있는 손님들

          



종로 피맛골은 삼치구이를 처음 영접하게 만들어준 곳이다. 특히 지갑이 얇은 대학시절에 모임 장소로 피맛골은 이해타산이 잘 맞아떨어졌다. 좁다란 골목 사이 허름한 술집으로 들어가 생선구이를 주문하면 불특정 생선들이 서로 엉긴 채 구워져 나왔다. 그중 가장 두툼한 생선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였다. 그 생선이 삼치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테이블에 삼치가 올라오면 늘 안도감이 들었다. 종로의 피맛골은 지역 정비사업으로 사라졌지만, 비슷한 배경의 거리가 인천에 존재했다. <동인천 삼치거리>는 인천의 오래된 명물거리다. 약 40여 년 전 한 노부부가 연탄 불로 구운 삼치와 지역 막걸리를 제공하면서 이 거리가 유래되었다. ‘인하의 집’이나 ‘인천집’은 삼치거리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집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처음 추천받은 곳이라 다시 와도 <인천집>으로 향했다. 안주의 카테고리는 폭넓어졌어도 주문 방식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삼치구이와 소성주. 원래 생선구이에는 ‘소주주의’지만, 여기는 막걸리와의 페어링이 옳다고 본다. 동시대적 물가 상승을 피해 갈 수는 없지만, 이 골목은 전체 상승률에 비껴간 가격대다. ‘인천집’은 연탄구이가 아닌 황토 화덕 속에서 생선을 굽는다. 짭짤한 생선구이와 달달한 막걸리는 서로 ‘단짠 조화’를 이뤘다. 안주와의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막걸리 주문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동인천 삼치거리에서 먹는 삼치구이와 소성주

          


200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라는 보물 같은 한국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이 다큐는 인천 루비살롱 클럽의 출범과 그 클럽을 근거지로 삼은 성격 다른 두 밴드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다. 직접 출연한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드러머인 백승화가 메가폰을 잡았다. 영상 내내 등장하는 배경은 부평 모텔촌에 있는 루비살롱 클럽이었다. 라이브 클럽이자 인디 레이블이었던 루비살롱은 수많은 락스타를 탄생시키면서 인천 락문화에 큰 기여를 했다. 세월이 흘러 거처를 부평에서 신포동으로 옮겼다. 1965년부터 선원들이 묵었다가 1990년대에 경쟁에 밀려 폐업하였던 인천여관을 인수했다. 여관의 형태와 쓸모를 최대한 살려 카페와 전시공간 그리고 음악감상실로 꾸몄다. 그 당시 사용했던 욕실과 화장실도 인테리어로 십분 활용했다. 음악 레이블 회사답게 곳곳에 음악적 오브제들이 넘쳐났다. 시간의 흔적을 가늠할 수 없는 레트로한 소품들도 빈티지란 옷을 입고 운치 있게 놓여있었다. 특히 주인장이 BTS 팬인지 적지 않은 관련 소품과 사진들이 해당 팬들을 끌어오게 만들었다.   



        




인천여관×루비살롱 카페 내부 모습

         



인천 개항로 맥주의 포스터 모델을 떠올려보자.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은 한번보고 절대 잊을 수 없는 날것의 포스였다. 포스터 속 주인공은 70대의 최남선 씨. 어릴 적부터 그림을 배워, 생애 많은 부분을 극장 간판을 그리는데 보냈었다. 이후 개항로에서 페인트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그림 작업을 놓지 않았다. 2017년에는 <송월동 동화마을>의 벽화를 그리기도 했었다. 송월동 동화마을은 이름 그대로 동화 같은 마을이다. 개항 이후 송월동은 외국인들이 들어와 거주하면서 부촌이 되었지만, 이들이 빠져나가자 슬럼화되어 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2013년부터 주거환경 조성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금의 동화마을이 탄생하였다. 자유 공원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와 북성동 짜장면 거리 사이에 송월동 동화마을이 위치해 있다. 송월 장로교회가 있는 언덕 가장 위에서 동화마을을 내려다봤다. 마치 서울 남산공원에서 소월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해방촌 꼭대기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던, 심지어 성인이 되어 보았던 유명 세계명작동화를 주제로 마을을 덧입혔다, 1차원적인 벽화 그림부터 입체감 있게 표현한 조형물까지 여느 벽화마을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작업이었다. 골목 구석구석까지 촬영 포인트가 많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동심의 블랙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감성 터지는 골목을 발견할 때마다 같은 연인과 마주쳤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송월동 동화마을의 꾸며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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