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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끌어당기는 인천이라는 허브(1)






어릴 적에 경기도 안양과 서울 시흥동에서 살았었다. 둘 다 1호선 수원행 전철역과 지척이었다. 현재 1호선은 충청도까지 연장되었지만, 1990년대만 해도 1호선의 시작점은 인천과 수원이었다. 지하철을 혼자 이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내게 집으로 돌아올 때는 무조건 ‘수원행’을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반대로 ‘인천행’ 열차는 무조건 타지 말자는 강박이 생겼다. 유독 인천에 갈 이유도 없었지만, 굳이 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대학교 MT 여행을 떠나면서 마수걸이 인천 방문이 성사되었다. 인천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인천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조수가 밀려들어오듯 다가온 인천의 판도라를 열고 싶었다. 1호선 인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인천여행은 좀 더 남달랐다. 단순히 얼굴만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인천이 담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돌아오고 싶었다.        



    




인천 차이나타운 안 풍경

       



구한말 인천항을 통해 외래 문물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인천은 ‘최초’의 타이틀을 많이 획득했다. 굳이 글 초반에 모두 열거하지 않아도 차차 진행되는 여행 기록 중에 충분히 등장할 것이다. 첫 번째 ‘최초’는 <인천역>이다. 인천 여행의 시작점. 서울에서 출발해 1호선 인천행 열차를 타고 온 이 노선이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다. 인천역사 자체가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순백의 2층 구식 건물이라 역사의 진정성이 바로 와닿았다. 광장에 나오면, ‘한국 철도 탄생 역’을 기념하는 기차모형의 대리석 조형물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실제 제작된 열차를 본떠 만든 것인데, 어릴 적 봤던 애니메이션 속 열차와 흡사했다.『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서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에서 연기는 반공에 솟아올랐다.』1899년 9월 19일 자 독립신문에 실린 경인선(인천-노량진 구간) 개통 기사 속 첫 열차를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화통을 삶아 먹었다고 하는 관용적 표현의 실제 상황으로 이해했다. 소박한 인천역 전경과는 달리 석양보다 더 붉은 패루가 공간을 압도하는 길 건너 차이나타운 입구는 상대적으로 화려했다. 누가 봐도 중국이었다.          






1호선 인천행 종점인 인천역 앞

                



인천역 인근은 관광지여서 볼거리들이 점조직처럼 몰려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박물관과 전시관은 주제 별로 도보 이동이 가능했다. <짜장면 박물관>이 구미에 당겼다. 짜장면을 먹기 전 의식처럼 박물관을 방문할까도 했지만, 내재된 반대급부에는 관료적 구상으로 기획한 구색 맞추기식의 박물관일 거란 선입견을 이겨내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자본주의적 잣대를 들이댔다. 입장료가 합리적이라 식전 박물관 방문을 결정했다. 기대가 바닥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흥미로운 정보가 많아 유익했다. 박물관 내부 구성은 다소 구태의연했지만, 짜장면의 역사를 학습하기에는 최고의 장소였다. 짜장면 박물관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개업한 중국음식점인 ‘공화춘’이 사용했던 건물이다. 1983년에 영업을 마치면서 공실이 된 건물을 인천 중구청이 매입해 박물관으로 활용하였다. 전시 마무리 동선에 당시의 공화춘 현판이 전시되었다. 박물관 내부는 공화춘의 증표 같은 유물과 현장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모형들로 채워졌다. 공화춘은 중화민국 건국 시기와 같은 1912년에 개업했다. 그 당시 인천 부둣가는 외국과의 무역이 활발했었고, 쿨리라고 불리는 산둥 지방 출신의 노동자들이 많았다. 이들은 편리하고 값싸며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했었다. 그렇게 탄생한 요리가 ‘짜장면’이었다. 이후 짜장면은 전국적으로 전파되었고,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때 짜장면 가격이 얼마였는 줄 알아?”란 물음은 꼰대들의 전형적인 ‘라떼’ 주제다. 이 박물관의 기록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에는 140원, 1980년대는 350원, 1990년대는 1,300원으로 급등하였고, 2000년도 경제 위기 전후로 3,000원대로 올랐다. 반대로 이 가격대를 알고 있으면, 역으로 상대방에게 질문해 나이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예전 공화춘이 건물로 운영 중인 짜장면 박물관

         


중국에서 시설물이나 무덤, 공원 따위의 입구에 세우는 구조물을 패루라고 한다. 차이나타운의 입구에서도 볼 수 있다. 중국 전통의 붉은색과 황금색의 조화가 눈길을 끈다. 차이나타운 골목에 즐비한 중국 음식점의 외관도 다를 바가 없이 화려함 그 자체였다. 세상에 맛집의 개념이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 무조건 외관이 크고 휘황찬란한 식당에 이끌려 들어가 그 음식에 설득당하고 나왔었다. 물론 그 시절 나의 미식관은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에 허탈함 마저 몰랐었다. 성인이 되고 일행 중 누군가의 경험을 믿고 들어갔던 식당은 되레 그 친구가 맛이 변했다며 초장에 판을 깨버렸다. 오롯이 혼자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전 조사 끝에 선택한 몇 개의 중국 음식점 중에 현장답사로 한 군데를 선정하기로 했다. 차이나타운 메인 거리에서 세상 관종처럼 군림하는 음식점들을 제치고 들어선 식당은 <신승반점>이었다. 솔직히 해당 정보가 없었다면 이 골목까지 나 스스로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원조 짜장면 집’인 공화춘의 논란은 있지만, 신승반점은 예전 공화춘을 운영했던 우희광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건 팩트였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유니짜장’. 잘게 간 고기를 밥 위에 얹어 그 위에 간장소스를 뿌려 자주 먹었던 기억 때문인지, 유니짜장은 처음부터 내게 소울푸드였다. 면 위에 오이채와 계란 프라이가 얹어진 유니짜장이 나왔다. 짜장 소스는 입자가 균일하고 점도가 적당해서 면으로 쏟을 때 특유의 쾌감이 발현되었다. 면을 다 먹어도 짜장 소스가 충분히 남아 밥을 말아먹는 걸로 마무리했다. 남은 소스를 밥 없이 전부 긁어먹었다면 여행 중에 물만 찾게 되었을 것이다.             







신승반점에서 주문한 유니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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