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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 | 왜관역 앞 카페와 수도원 수제소시지

칠곡 <카페 하루><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외’와 ‘왜’. 이 두 음절은 비슷하게 들리지만, 마음의 결은 다르게 울린다. ‘외’는 안으로 침잠하는 소리다. 혼자임을 받아들이는 마음, 조용히 자신과 마주하는 감정. 외길, 외따로이, 외로움. 그 단어들은 말끝마다 쓸쓸한 숨결을 품는다. 반면 ‘왜’는 밖을 향한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가만히 넘길 수 없는 이유들, 묻고 또 묻는 감정의 외침이다. 왜, 나는 여기 있는가. 왜, 그때는 그랬는가. 그래서인지 ‘왜관’이라는 이름은 내게 지리적 단어가 아니라, 멈춰 선 마음의 풍경처럼 다가왔다.


칠곡 왜관역의 공기는 정지한 듯 고요했고, 하늘은 묘하게 낮았다. 시간의 결을 따라 걷다 만난 <카페 하루역>은 마치 우연한 발견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 그리고 오보에 연주자였던 사장님이 커피를 통해 다시 연주하고 있다는 이야기. 손으로 직접 내리는 드립커피, ‘좋은놈, 더 좋은놈, 무지 좋은놈’이라는 메뉴 이름은 웃음을 지으며 철학을 건넨다. 하지만 그날, 카페의 문은 닫혀 있었다. 유리 너머 어둠, 문 아래 채워진 자물쇠 하나가 침묵의 대답처럼 나를 막아섰다. 작은 기대와 함께 떠났던 발걸음은 허탈과 함께 돌아섰지만, 어쩐지 그 씁쓸함마저도 하루라는 이름 아래 서정적으로 느껴졌다. 오늘은 닫힌 날이었구나, 하는 문장의 온도처럼.


기차 시간은 아직 멀었고, 나는 다음 행선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길은 곧 언덕이 되었고, 그 위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이 있었다. 낙동강을 굽어보며 서 있는 붉은 벽돌의 건물들. 한 시대를 지나온 듯한 이곳은 단지 종교 공간이 아니라 기도와 노동이 엮인 삶의 마을이었다. 한국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북에서 추방당한 수도자들이 새로이 일군 땅. 그들은 “기도하며 일하라”는 베네딕도회의 원칙을 따라, 땅을 일구고, 책을 만들고, 소시지를 만들었다.


그렇다. 소시지. 수도원 안에 있는 ‘분도푸드’에서는 독일식 수제 부어스트를 만든다. 수사들이 독일에서 배워온 전통 레시피를 바탕으로, 95% 돼지고기와 향신료를 넣고 정성껏 만든다. 마늘 부어스트, 바이스 부어스트. 전례와 기도가 머무는 공간에서 그런 육중한 향신의 냄새가 난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곧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일은 곧 기도이고, 음식은 노동의 결실이자, 신의 손길이 깃든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수도원의 건축 또한 묵직한 울림을 품고 있다. 1928년에 지어진 구 성당은 프랑스 선교사의 손을 거쳐 신고딕과 신로마네스크 양식이 어우러진 적벽돌 건물이었다. 2007년 화재로 한순간 잿더미가 되었지만, 두 해 만에 다시 재건되었다. 그 붉은 벽돌들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회랑을 걷는 발소리마저 기도처럼 느껴졌다.


기도의 벽, 노동의 땀, 그리고 한 줄의 햇살이 어우러지는 공간. 멈춰 선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자리, 소외된 이들이 공동체로 거듭난 곳. 수도원은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우리 삶도 이렇게 다시 지을 수 있다고, 무너진 곳에도 성전은 세워질 수 있다고.


나는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했고, 끝내 카페 하루역에는 가지 못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켠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 하루는 ‘외’로 시작해 ‘왜’를 통과하고, 다시 조용한 ‘외’로 돌아오는 순례 같았다. 그 사이에서 내가 발견한 건 어떤 커피나 소시지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야말로 왜관에서 내가 얻은 가장 진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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