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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 | 파벤져스의 여름

양양 <범부메밀국수><중광정해수욕장><낙산해수욕장>










대학 시절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같은 이름을 부르고, 비슷한 레벨의 유머를 나누는 것은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끈끈한 모임이 하나 있다. 단톡방에서는 시답잖은 농담이 90%를 차지하지만, 그만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우리는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해마다 한 번은 꼭 여행을 함께 떠난다.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서로의 등불이 되어준 이 모임, 이름하여 ‘파벤져스’다.


몇 해 전, 가평 여행 중이었다. 요리 중에 파가 필요하다는 말에 내가 대파 한 단을 사 왔다. 3천 원 남짓한 그 대파는 요리에 잠깐 쓰이고는, 어느새 노래방 마이크가 되어 사람 손을 타고 돌았다. 그날의 분위기 속에서 ‘어벤져스’에 ‘파’를 붙이자는 농담 같은 제안이 나왔고, 우리는 술기운에 너털웃음으로 동의했다. 그렇게 99학번 네 명이 모여 만든 <파벤져스>는 우정이라는 이름의 히어로 팀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매해 우리는 여행을 이어갔다. 여행지 선정도 쉽지 않은 과정이다. 강원도 고성을 추천했지만, 여름 성수기라는 높은 숙소 예약률 앞에 행선지가 양양까지 미끄러졌다. 그렇다고 우리 발걸음이 멈출 리는 없었다. “한 번쯤은 양양도 즐겨보자”는 말에 40대 아재들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렸다. 어쩌면 늦은 사춘기일지도 모른다. 아니, 인생 2막의 개막일지도.


양양 초입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고, 우리는 한 식당을 목표로 달렸다. 이름은 <범부메밀국수>. 도착해보니, 이곳은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있는’ 가게였다.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렸지만, 주변은 여전히 조용한 시골 풍경. “여기가 맞아?”하며 허공을 가르키며 내려보면, 이미 가게 앞엔 차량 행렬이 길었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가게 앞을 흐르는 작은 천은 오래된 소설의 배경처럼 정겹고, 국수 위엔 해바라기 씨와 김가루가 풍성했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순메밀 면발에서 고소한 내음이 피어난다. 물국수와 비빔국수를 모두 시켜 놓고, 차가운 국수에 수육을 말아 먹었다. 말없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먹는 이 순간이, 벌써 마음 깊숙이 남는다. 기억은 늘 혀끝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숙소는 낙산 해수욕장 앞, 오래된 민박집을 개조한 곳이었다. 남자 넷이서 화려한 숙소를 바랄 이가 있을까. 방 안에 화장실만 있으면 족하다는, 검소하지만 단단한 기준. 7월의 성수기, 하룻밤 8만 원이면 충분했다. 낙산에서 민박을 오래 해오신 아주머니가 딸의 권유로 리모델링하고 온라인 예약까지 시작하셨단다. 그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는 이곳에서의 3일이 얼마나 편안할지 이미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찾은 해수욕장은 ‘중광정 해수욕장’. 젊은이들로 가득 찬 그곳은 마치 빠른 비트의 댄스곡 같았다. 해변은 흥겨운 리듬으로 들썩이고, 셀카 속의 웃음은 파도처럼 쉴 틈 없이 밀려왔다. 우리도 그 물결에 섞여보려 했지만, 낯선 춤을 억지로 따라 하다 삐끗한 기분이었다. 젊음은 분명 눈앞에 있었지만, 우리는 파도처럼 그 자리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았다. 웃음소리 사이로 왠지 모를 쓸쓸함이 스며들었다. 그래도 기죽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시 낙산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파도는 우리가 돌아온 걸 먼저 알아보듯 반가이 소리를 건넸다. 한때 수많은 여름을 보냈던 이곳은, 예전보다 한결 조용했다. 그러나 그 적막이 오히려 숨을 쉬게 했다. 파도는 속삭이고, 모래는 오래된 기억처럼 발을 감싸주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낙산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은 변했지만, 여긴 여전히 우리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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