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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 삶에는 자동환승이 없다

오사카 지하철






확실히 도쿄보다는 오사카의 지하철 시스템이 단순하다. 덜 복잡한 노선도, 또렷하게 구분되는 색깔들. 몇 번만 긴장하며 타 보이면, 그다음부터는 실수할 일이 거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열 번 연속으로 갈아타기와 승차를 무사히 해내고 나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괜한 자신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운전도 처음 배울 때보다, ‘이제 좀 알겠다’ 싶은 시기가 가장 위험하다고들 하지 않던가. 긴장이 풀리고, 허세가 앉을 자리를 내어 줄 때, 사고는 조용히 옆자리에 와서 다리를 꼰다.


오사카의 전철에는 ‘자동환승’이라는 편리한 개념이 있다. 개찰구를 나가지 않은 채 같은 회사의 다른 노선이나 플랫폼으로 옮겨 타면, 시스템은 그 모든 이동을 하나의 여정으로 인식한다. 첫 승차 때 찍힌 교통카드의 정보가 내 이동 경로를 끝까지 따라붙고, 나는 그저 정해진 방향으로 몸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환승역에서 열차 번호가 바뀌어도, 우리나라 9호선 급행을 탈 때처럼 플랫폼을 갈아타도, 시스템은 묵묵히 나의 경로를 이어 붙인다. 마치 “괜찮아요, 이미 알고 있어요”라고 말하듯, 중복 요금을 받지 않는다. 사람 대신 기억해 주고, 계산해 주고, 틀리지 않는다. 적어도 실수는,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쪽에서 일어난다.

그날의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환승역에서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옮겨질 거라 생각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안내 방송도, 전광판의 행선지도 나왔지만 일본어에 익숙하지 않아 몰랐다. 부끄럽게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플랫폼을 옮겨 타는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실려가고 있다는 걸 눈앞 풍경의 낯섦으로 뒤늦게 깨달았다.

‘아, 이쪽이 아니었구나.’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는 이미 두 정거장을 지나 있었다. 서둘러 내려 반대편 열차를 갈아타러 뛰어가면서, 머릿속에서 ‘자동환승’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뒤틀려 들렸다. 시스템은 분명 나를 돕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한 번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맞는 선로 위에 서 있는지 점검하지 않았다.


삶도 어쩌면 이와 다르지 않다. 회사에서, 관계 안에서, 사회라는 거대한 노선도 위에서 우리는 종종 ‘자동환승’을 기대한다. 이 정도로 성실히 타고 있으면, 이 정도로만 따라가면, 어련히 잘 이어지고, 어련히 잘 도착하겠지. 그렇게 믿으며 가만히 서 있으면, 언젠가 시스템이 알아서 다음 플랫폼으로 옮겨 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향을 확인하지 않은 채 서 있기만 하는 사람에게, 삶은 친절한 안내 방송을 반복해 주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창밖을 보듯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애초에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선로 위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지하철과 달리, 삶에는 “죄송합니다, 방금 역에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라는 정정 방송도 없다. 이미 지나온 정거장은 그저 지나간 시간으로 남을 뿐이다.

오사카의 ‘자동환승’ 시스템은, 개찰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나의 이동을 끝까지 책임감 있게 이어 붙인다. 그러나 삶의 선로에서만큼은, 어디서 갈아탈지, 언제 멈출지, 어느 방향으로 몸을 틀지는 여전히 내 몫이다. 편리한 시스템은 실수를 줄여 주지만, 나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그날 잘못 탄 열차에서 내리며 나는 조금 늦게야 이해했다. 진짜 위험한 건 복잡한 노선도가 아니라, ‘이제는 안 봐도 돼’라는 자만이었음을. 그리고 삶에는, 결국 ‘자동환승’이라는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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