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후쿠시마 <산쿠>
오사카 후쿠시마 지역은 흔히 말하는 오피스 상권에 속한다. 다시 말하면, 여행자가 굳이 일부러 찾아올 동네라기보다 주변 직장인들이 점심과 퇴근 후의 시간을 해결하는 생활권에 가깝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 가이드북에서 후쿠시마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게 다뤄진다. 그런데 나는 오직 한 라멘집 때문에 이 지역의 역, 후쿠시마역에 내렸다. 관광 명소도, 쇼핑 스폿도 아닌 한 그릇의 국물에 이끌려 도착한 역이었다. 조용한 후쿠시마의 골목을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유독 사람들이 한곳에만 빼곡히 모여 있는 지점을 마주하고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가게 앞 붉은 포치 아래로 [烈志笑魚油 麺香房 三く]라는 긴 이름이 걸려 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산쿠 三く>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는 줄에 합류하자마자 이 집의 시작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산쿠의 주인, 야마모토 쇼지는 처음부터 라멘 장인이 아니었다. 그는 오사카의 유명 면 요리집 ‘혼케 사누키야’에서 우동과 소바, 그리고 일본식 국물의 세계를 두텁게 익힌 사람이다. 다시마와 가쓰오, 멸치가 만들어내는 감칠맛의 층위를 오래 들여다본 끝에, 그 지식을 바탕으로 라멘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올라선 것이다. 국물의 깊이를 이미 알고 있던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형식이 라멘이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마치 긴 우회로를 돌아온 뒤에야 제자리 같은 곳에 도착한 사람처럼, 그의 길 위에 지금의 산쿠가 놓여 있었다.
산쿠라는 이름에도 이 가게의 태도가 스며 있다. 표면적으로는 다소 난해한 한자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영어 단어 ‘THANK’를 소리 나는 대로 비틀어 넣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농담 같지만, 동시에 꽤 진지한 작명이다. 가게 곳곳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붙어 있고, 직원들의 유니폼에는 다양한 사투리로 적힌 ‘고마워요’가 빽빽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심지어 영업시간마저 11:39, 18:39처럼 ‘39(산큐)’에 맞춰져 있어, 이 가게의 하루는 말 그대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맞춰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가게는 콘셉트를 팔고, 또 어떤 가게는 맛을 판다. 산쿠는 ‘고맙다’라는 감정을 기념비처럼 세워놓고, 그 아래에 조용히 라멘을 쌓아 올리는 집이다.
줄이 조금씩 앞으로 밀려가고, 마침내 입구 앞에 다다르자 먼저 식권 자판기가 나를 맞았다. 한국어 메뉴가 따로 적혀 있지 않았기에, 미리 웨이팅 동안 한국인 블로그들을 뒤지며 내가 고를 멸치 라멘, 그러니까 ‘카케 라멘’의 위치를 머릿속에 외워 두었다. 시그니처 메뉴답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버튼에 자리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긴장을 덜고 식권을 뽑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 후 약 30분 만에야 카운터 자리 하나가 내 몫이 되었다. 자리로 안내받아 앉는 순간, 가게 안 풍경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졌다.
카운터 너머 주방에서는 손과 도구와 열기가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커다란 냄비 위로 멸치를 손질하는 소리가 나고, 국물이 끓어오를 때마다 떠오르는 거품은 끊임없이 걷어내졌다. 한쪽에서는 그릇을 미리 뜨겁게 데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아진 면을 한 번 툭툭 털어 그릇 안으로 안착시켰다. 스태프들의 동선은 정확하고 매끄러워, 마치 오랜 연습 끝에 완성된 무용 같은 인상을 준다. 늘 길게 늘어선 줄에 비해 회전이 빠르다는 평은, 어쩌면 이 숙련된 손끝의 박자로부터 나온 말일 것이다. 그 박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반쯤은 ‘맛있다’고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언제나 ‘카케 라멘’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 카케 라멘은 호불호가 뚜렷하기로도 유명하다. 기왕이면, 오늘의 나는 이 멸치 국물과 잘 맞는 사람이고 싶었다. 드디어 내 앞에 그릇이 내려왔을 때, 나는 잠시 젓가락을 들지 않고 라멘을 바라보기만 했다. 토핑을 최소화한 그릇 위로 맑게 비치는 국물은, 투명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깊고, 진하다고 말하기에는 또 너무 고요했다. 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철저히 제거하고 여러 종류의 건어물을 배합했다는 설명처럼, 향은 강하지만 비린 기운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조리 과정은 거의 의식에 가깝다. 큰 냄비 안에서 멸치가 천천히 몸을 풀면, 떠오르는 거품은 언제나처럼 집요하게 걷어내진다. 그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난 뒤에야, 간장의 깊이가 더해져 국물이 비로소 한 그릇의 얼굴을 갖게 된다. 중가느다란 면은 탄력 있게 삶아져, 입안에서 소바처럼 깔끔하게 끊기는 식감을 만든다. 그 위에 차슈와 대파, 시금치가 올려지면, 바다와 밭과 밥상이 한 그릇 안에서 교차하는 작은 풍경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뒤에 마주한 국물은, 진한데도 피곤하지 않고, 묵직한데도 둔하지 않았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짭짤함과 고소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국의 된장찌개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인상을 가볍게 배반하는 맛이기도 했다. 혀끝에서는 익숙함이, 목 아래로 내려갈수록 낯섦이 감돌았다. 국물은 분명히 멸치의 것을 말하고 있는데, 그 멸치는 내가 알고 있던 멸치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처음엔 국물만 천천히 떠먹었다. 다음엔 면과 차슈를 함께 올려 먹으며 식감의 리듬을 따라갔다. 어느 정도 입이 적응하자 후추와 별도 양념을 조금씩 더해가며, 국물의 농도와 향의 붓질을 내 입맛에 맞게 조정해 보았다.
분명한 건, 이 라멘은 쉬운 스타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무난하게 사랑받도록 설계된 맛이 아니라, 분명히 어떤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을 사람들을 기다리는 맛이다. 나 역시 그 정도는 알고 감안하고 들어왔기에, 이 낯섦에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게 산쿠의 멸치 라멘은 ‘낯설지만 포용 가능한 맛’이었다. 입 안에서 익숙함과 낯섦이 부딪히는 자리에,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나의 태도가 함께 들어와 앉는 느낌. 결국 한 그릇의 라멘을 마음에 들게 만드는 것은, 맛만이 아니라 그 맛을 받아들이려는 쪽의 준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이 유명해진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지금도 ‘멸치를 끝까지 밀어붙인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오사카에는 이미 강렬한 육수로 승부하는 라멘집들이 수없이 많다. 그 진한 육수들 사이에서 멸치와 간장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재료만으로 라멘을 만들겠다고 고집하는 일은, 어찌 보면 스스로를 좁은 길로 밀어 넣는 선택이다. 그런데 바로 그 고집이 이 집을 더 또렷하게 보이게 했다. 많은 식당들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맛’을 향해 나아갈 때, 산쿠는 ‘이 맛을 사랑할 사람들’을 향해 한 우물만 판 셈이다. 멸치를 끝까지 밀어붙인 그 용기가 사람들의 혀를 사로잡았고, 결국 이야기와 명성을 만들어냈다.
라멘을 다 먹고 난 뒤, 나는 그릇을 거의 비우다시피 했다. 국물까지 모두 마셨을 때, 비어 있는 그릇은 어떤 면에서는 나를 비워낸 그릇처럼 보였다. 방금 전까지 그 안에 있었던 멸치와 간장의 농도는 이제 내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여운이 남아 있는 채로, 나는 라멘 사진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곧 몇 명의 지인이 메시지를 보냈다. “어때? 맛있어?”, “여기 가도 괜찮아?” 나는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도전하고 싶은 날에 먹으면 좋을 라멘이야.” 맛있다, 혹은 맛없다는 말만으로는 이 그릇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이 라멘을 통해 내가 어떤 날의 나를 선택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