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신두리 해안과 해안사구>
2006년 여름, 신두리 해수욕장에 처음 갔었다. 충남 출신의 친구가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해변이라며, 대학원 동료들을 데리고 간 그날, ‘신두리’라는 이름부터가 낯설고도 신비로웠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던 웃음소리 사이로 나는 조용히 그 이름을 입안에 굴렸다. ‘신두리, 신두리…’ 반복할수록 마치 주문처럼 귓가에 감겨왔다. 장난처럼 그 이름을 축구선수 ‘차두리’와 엮어 보기도 했다. '두리'라는 말엔 어딘가 정겹고도 친근함이 있었다. 내 성이 ‘신’씨이기에, 한때 미래의 아이 이름 후보에 올렸던 적도 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 시절의 모든 장면이 ‘신두리’라는 말 안에 고요히 눌어붙어 있었던 셈이다.
그해 여름, 신두리 해수욕장은 낡고 투박했기에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었다. 모래밭 옆으로 대충 세워진 간이매점에서는 튀김 냄새와 차가운 음료가 바람을 타고 흘렀고,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 삽으로 모래성을 쌓거나 물 빠진 갯벌에서 칠게를 쫓았다. 저녁이 되면 해변 끝자락에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 고기를 구웠다. 따뜻한 불빛 아래 번지는 연기 너머로 우리는 오래 기억될 여름을 구워내고 있었다. 그 시절의 사진 몇 장이 다시금 폴더 속에서 삐져나오며, 멀어진 줄 알았던 기억의 촉수를 하나씩 되살려 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한 겹 더해진 지금, 다시 신두리 해수욕장을 찾았다. 입구에는 최근 세운 듯한 화강암 표지석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해변을 따라 ‘서해랑길’이 정비되어 있었다. 갖출 것 하나 없던 시절의 풍경은 사라졌지만, 낯설지 않았다. 신두리는 이제 낭만을 숨기지 않고 세련된 옷을 입었으나, 여전히 겸손한 몸짓으로 옛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마치 오래된 책갈피에서 발견한 들꽃처럼—빛은 바랬지만 향기는 더욱 깊어진 그런 것. 달라진 풍경 속에서도 내 기억 속 순박한 신두리는 여전히 모래 아래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 신두리 해안사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바람이 쌓아 올린 시간의 성채이자, 자연이 써 내려간 필사본의 마지막 장이었다. 파도는 모래를 육지로 실어 나르고, 바람과 풀뿌리는 묵묵히 그것을 다져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이 반복은, 마치 바다가 육지에게 띄운 느린 편지 같았다. 그 안에는 침묵의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모래 언덕은 햇빛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를 달리하며 마치 숨을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이국의 사막에 서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졌고, 나는 내가 어디쯤 있는지 잊은 채 그 거대한 침묵 속에 잠겼다.
그 넓은 사구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천천히 풀을 뜯는 소들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이 소들은 해안사구의 식생을 지키는 조용한 정원사다. 외래식물의 확장을 막고, 이 생태계를 본래의 순환 속에 되돌려놓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은 마치 자연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치유의 손길 같았다. 모래, 바람, 풀, 그리고 소. 이곳의 풍경은 그 하나하나가 주인공인 합주이며, 모두가 함께 완성하는 한 폭의 살아 있는 풍경화였다.
지형을 따라 걷다 보면 발밑에서 사박사박 모래가 말을 걸고, 아직 덜 자란 억새는 바람을 등에 업은 채 속삭인다. 언뜻 황량해 보이는 이 땅은 사실 수많은 생명들이 엮어낸 생태의 그물망이며, 풍경의 유연함 안에 생명의 단단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이야기의 무대다. 오늘의 나는 그 서사에 잠시 발을 담근 한 명의 조용한 행인일 뿐이다. 언젠가 계절이 무르익고 억새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날, 나는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바람이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갈 그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