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본 홋카이도 | 흰수염폭포에서 만난 청빛의 정적

홋카이도 비에이 <흰수염폭포>











일본 홋카이도 비에이로 이동했다. 굉장히 영험한 비주얼로 물이 흐르는 폭포가 있다고 했다. 시라히게노타키(白ひげの滝, 흰수염폭포)는 마치 대지의 숨결이 절벽 사이로 스며 흘러나오는 듯한 용출형 폭포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지하에서 솟아오른 물이 암석 틈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폭포를 이루는데, 그 하얗고 섬세한 물줄기가 마치 긴 세월을 견딘 노인의 흰수염 같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마침 함박눈이 내렸다. 장엄하게 흐르는 폭포와 콜라보 공연을 하는 듯했다. 이 폭포가 떨어져 흐르는 강물은 '블루 리버' 라고 불릴 만큼 신비로운 청빛을 띠는데, 이는 온천 지대의 미네랄과 물속의 미세 입자가 빛을 산란시키며 만들어내는 비에이 특유의 자연색이다.


겨울에 나는 이 폭포 앞에 서면, 세상 끝의 정적 속에서 얼음과 물이 공존하는 경계의 순간을 바라보는 듯한 감정이 든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는 얼어붙지 않은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고, 그 주변에 형성된 고드름들은 은빛 성벽처럼 층층이 쌓여 장관을 이룬다.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강물은 차가운 겨울 햇빛에 반사되어 푸른 유리파편처럼 반짝거리고, 나는 그 색이 너무 순수해서 감히 손끝으로라도 건드리면 깨져버릴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폭포의 소리는 눈 덮인 숲에 흡수되어 부드럽게 울렸고, 그 잔향 속에서 나는 잠시 현실을 잊고 한 폭의 동화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폭포 바로 위에는 시라히게다테교(白ひげ橋)라는 전망교가 걸려 있어, 여행자는 이곳에서 사계절 다른 표정을 지닌 폭포와 블루 리버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다. 주변에는 비에이의 대표적인 온천 숙소인 시로가네 온천 마을이 자리하고, 몇 분만 걸어가면 겨울 조명으로 더욱 신비로워지는 비에이 청의 호수(青い池)까지도 이어진다. 다리를 건너며 나는 발밑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을 느꼈고, 그 바람이 폭포의 물안개를 실어 나르며 볼을 스치자, 마치 이 땅의 정령들이 잠시 나를 스쳐 지나간 듯한 기묘한 감흥이 마음 깊숙이 번졌다. 그렇게 나는 겨울의 비에이에서, 자연이 빚어낸 가장 순수한 색과 소리, 그리고 고요한 울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여정을 이어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포르투갈 | 파란 하늘 아래 동화의 도시, 아마란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