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
코로나 때문에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각보다 적었는데, 때때로 테이블에 앉아 내추럴한 차림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으면 옆에서 “혹시… 여기 스태프세요?”라고 물어오는 손님이 간혹 계신다. ‘이때다!’ 싶어 기회를 낚아채고 대화를 이어나가면, 손님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풀어놓는다. 손님들은 나이대를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 또래부터 할머님까지 폭이 넓어 살아온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이때 주로 나는 이야기를 듣는 편, 내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섯 시면 대부분이 문을 닫는 동네라 어딜 나가지도 못하고, 저녁이면 공용공간을 지키며 한 달이 지났을까. 몇 번 가본 동네 빵집이 주말에는 늦게까지 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놀러 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빵만 재빨리 포장해 나오는 바람에 내부를 자세히 둘러볼 겨를이 없어 몰랐는데, 내가 좋아하는 책이 놓인 게 아닌가! 그 책을 계기로 처음 본 사장님과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던 중, 다른 게스트하우스에 스태프로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는 언니가 합석하게 되었고, 우리 셋은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미래 설계를 주제로 3시간 동안 쉴 틈 없이 말을 이어갔다. 회사의 오너였지만 제주가 좋아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에 정착해 빵집을 운영하게 됐다는 사장님의 이야기. 오래 준비한 시험에 합격하고, 마지막 쉬는 시간을 제주에서 보내고 싶어 내려왔다는 언니의 이야기. 그리고 제주 곳곳을 다니며 나만의 여행 잡지를 만들어 볼 예정이라는 내 이야기까지.
'막상 이 길이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그래도 첫 직장은 좀 번듯한 곳에 가야지.'라는 주변 어른들의 말까지 더해져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이들과의 대화는 갈피를 잡게 해 준 매우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일단 해보고 싶은 거 하고, 해보니까 아닌 것 같아 그만두더라도 다른 것에 도전할 시간이 아직 충분한 나이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