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기치조지
22살 생일 기념 여행은 도쿄였다. 여행의 설렘으로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서일까, 매트리스가 너무 푹신해서였을까. 손에 디즈니랜드 교환권을 꼭 쥐고 잠이 들었었는데, 이게 웬걸! 일어나보니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빨리 출발한다면 낮 퍼레이드 끝 무렵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실물 티켓으로 교환해준다는 곳이 썰렁했다. 잘못 본 건가 싶어 교환권을 다시 확인했을 때,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글자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오후 1시 이전 교환 필수'
미키마우스가 반기는 입구를 앞에 두고 차마 발길을 돌릴 수 없었기에 근처에 있던 여성분에게 전화를 빌렸고, 다행히 현지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죄송하지만 제가 20분 정도 늦게 도착을 했는데요, 혹시 지금 티켓을 교환할 방법이 없을까요?”
정중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들려온 대답은 청천벽력 같았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부터 미리 티켓을 사두었을 만큼 굉장히 고대하던 일정이었는데, 늦잠 자느라 티켓을 날리다니.
그래도 좋은 날을 이렇게 안 좋게 끝내버릴 수 없어서 다음날 가려던 기치조지로 향했다. 오후 4시, 눈물의 첫 끼를 먹고 식당 문을 나선 순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딸, 뭐 하고 있어?” 라는 물음에 상황을 실토했다. 분명 한 소리 듣겠다는 걸 알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말을 꺼낸 것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 카드 가지고 있지? 그걸로 티켓 새로 사. 그것 때문에 행복한 여행을 망칠 수는 없잖아.” 라고 따뜻한 목소리로 쿨하게 대답했다.나의 멍청한 실수로 날린 티켓을 선뜻 사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기치조지의 번화가 한복판에서였다. 오랜 시간 스스로를 엄마의 애정이 결핍된 아이라고 치부해왔던 나는 그 한마디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딸이 된 것 같았다. 내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내 행복을 응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