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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쓰 Feb 23. 2023

이 하여백

이 글의 제목 '이 하여백'에서 이와 하 사이를 띄어 쓴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웃긴 얘기 하나 해 드릴게요.

저희 엄마는 첫째 딸이고, 저희 아빠는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 장남입니다. 엄마는 맏며느리로서 저를 낳고 동생을 낳지 않았지요. 즉 저는 외동딸입니다. 어릴 때 주변으로부터 '엄마한테 동생 낳아달라고 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나름 영리한 어린이였던 어린 그래이쓰는 동생이 생기면, 특히 그 동생이 남자일 경우엔 자신이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동생을 찾지 않았지요. 아 물론 딱 한 번 동생 낳아 달라고 말했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난 이후로 엄마가 무서워서 다시는 동생의 '동'자도 꺼내지 않은 걸 수도 있습니다. 


무튼 그랬던 제가 몇 살 때 인지는 모르겠으나 집을 나가겠다며 울고불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마치 남편이 내연녀를 데리고 들어올 때 느끼는 감정과 아마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큰 배신감에 휩싸인 저는 세상에 혼자인 저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있던 '호적'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제 이름 밑으로 남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난 저를 달래주기 위해 노력하던 부모님은 '남동생은 없다'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나라에서 뗀 서류의 공신력을 더 믿었습니다. 공적인 신용의 힘이죠.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지 면상도 궁금하고, 왜 나를 속이고 어디 가서 몰래 낳아서 키우고 있는지, 언제 집에 데려올 생각이었는지 머릿속이 복잡했습니다. 고백하건대 생각보다도 더 어릴 때의 일입니다. 


'남동생의 이름이 어딨 냐!'는 부모님에게 동생의 이름을 제 입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더욱 오열하며 외쳤습니다. 


"하여백!!!!" 


부모님은 하여백이 뭐냐며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이내 박장대소를 터트렸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났습니다. 어린 저는 더욱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만 엉뚱하게도 저는 제 이름 밑으로 '이하여백' 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이 씨 성을 가진 하여백'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그 자식은 얼마나 특별한지 옆에 숫자도 없고 줄 한 칸을 다 이름으로 차지했더군요.  


얼마 전에 '나한테 남동생이 있었으면 엄마, 아빠가 어땠을지 상상이 안 간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아빠는 마치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자마자 음료수 캔이 떨어지는 자판기 마냥 재빨리 '더 잘해줬겠지!'라고 대답을 해서 크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게 사실을 아님을 압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언젠가 제게 남자 형제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한 적도 있습니다. 앞으로 큰일을 치를 일이 생기면 아마 또 같은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형제, 자매가 없기 때문에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서 자라면서도 하고 싶은 건 거의 다 지원받으며 살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 엄마는 그걸 위해 일부러 동생을 낳지 않았다고 했지요. 저는 가끔 '투자의 기본은 분산투자인데 몰빵을 하다니... 이 정도면 투자가 망한 거 아니냐'며 농담을 하기도 하고 '낳아보니 너무 완벽해서 굳이 더 낳을 필요가 없었나 봐?'라며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아빠는 그럴 때마다 '낳아보니 너무 많이 먹어서 더 못 낳았어ㅠㅠ'라고 하죠. 


지금도 가끔 아빠는 '하여백이한테 부탁할걸!', '하여백도 챙겨 줘야지!'라는 식으로 장난을 칩니다. 지금 이 글도 방금 아빠가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갸는 호적을 파갔나. 요즘 서류엔 안 나오네'라고 농담을 하는 바람에 생각이 나서 쓰게 되었습니다. 남동생 하여백은 없지만 하여백의 몫까지 부모님께 잘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내 동생 이하여백.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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