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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이쓰 Jan 07. 2024

1.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나는 한국인이다. 

나에게 '꿈과 희망의 나라'는 국내의 한 놀이동산이었는데 물론 그곳도 갈 때마다 항상 즐겁고 좋았지만 진짜 꿈과 희망의 나라는 따로 있었다. 그걸 이번 크리스마스에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 월드를 가보고 깨달았다. 나의 어린 시절이 조금 부정당한 기분이 들 만큼 디즈니는 꿈과 희망, 환상, 행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랜 캐나다 이민 생활로도 깨닫지 못했던 나의 '뼛속까지 한국인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적어본다. 


1. 놀이동산 입장

개장을 해서 놀이동산에 입장을 하면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로 전력질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두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놀이동산 불문율이다.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가 보통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니까 아침에 입장해서 3-40분 만에 탄다면 그날 하루 동선이 여유 있어진다. 디즈니 리조트에 묵지 않은 나는 남들처럼 30분 일찍 입장할 수가 없었고, 원래 입장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디즈니 어플에서 실시간으로 뜨는 '현재 각 놀이기구 웨이팅 시간'을 확인하며 이유 모를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내 앞뒤로 서 있던 가족들이 일행이란 이유로 내 앞으로 모두 합쳐서 서고, 티켓 스캔 문제로 입장하는데 시간이 걸리자 짜증이 폭발했다. "우리 뒤로 서던가. 그 많은 인원이 다 앞으로 새치기를 해놓고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결국 바로 옆 줄로 가서 빠르게 스캔을 하고 입장을 했다. 하지만 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안 뛰고 여유 있게 걸어가는데 나만 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냥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다른 3일 아침 모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2. 줄 서기 

기본적으로 한국이나 일본보다 사람이 훨씬 적었다. 아주 인기 있는 놀이기구야 1-2시간이었지만 나머지는 주로 40분 정도였고 심지어 15-20분이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도 있었다. 절반 이상의 놀이기구가 줄을 서다가 어느 순간 일정 인원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들어가면서 줄이 사라지는 순간이 생겼다. 놀이기구 콘셉트에 따라 방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곳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면 줄이 사라졌고, 짧은 영상을 보거나 체험을 한 후 입장했던 문과 반대의 문의 열렸다. 그럼 또다시 줄을 서야 했고, 그 줄의 끝에 놀이기구를 탑승하는 곳이 있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줄이 섞였고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저 사람보다 앞이었는데 이제 뒤 라니!"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나빴다. 다 섞인 줄에서 다시 10분 정도 기다리고 놀이기구를 탔다. 이건 참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의식 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누가 내 앞에 있었고, 뒤에 있었고를 생각하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심지어 같이 간 일본인 남자 친구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3. 탑승 순서 

어떤 놀이기구에선 입장 이후 줄이 두 개로 나뉘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추가 패스를 구매한 사람들과 입장하는 곳에서 섞이고 나면 그 안에는 다시 줄이 두 개로 나뉘면서 두 군데에서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직원은 왼쪽 줄과 오른쪽 줄에서 번갈아 가며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한쪽 줄에서만 연달아 사람들을 태우는 게 아닌가. 어쩌다 내 뒤에 있다가 입장 후에 나와는 다른 줄로 갔던 가족들이 나보다 먼저 놀이기구를 탑승하는 모습을 내 눈에서 보고야 말았다. 

나는 Unfair 하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내가 느끼기에 굉장히 불공평한 상황이었다. 문득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당연히 나 같은 사람들이 항의를 했을 거고, 놀이동산 측은 사과를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 직원이 해고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역시나 이 문제를 의식하는 것조차 그 공간에 나 하나인 것 같았다.  


 4. 혼잡한 곳에서 걷기 

어느 순간, 굉장히 사람이 많아져서 정상적인 속도로 걷는 게 힘들어졌다. 나는 내 남자친구 뒤에서 천천히,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남자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 지금 왜 미는 거야!"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의 오른손이 그의 등 위에 있었고, 걸으면서 은근히 계속 그를 밀었던 것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보다 먼저 가려고, 아니면 적어도 그들보다 늦게 가진 않으려고 나도 모르게 내 앞사람을 밀고 있었다.

내 주변의 그 누구도 나처럼 빨리 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상황에 맞는 속도로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데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유모차와 전동차가 너무 많아서 정상적으로 걷는 게 불편하고 힘드니까 짜증이 난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 산다. 다들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 내가 느끼는 이 도시는 가성비를 추구하고, 빠르게 돌아가고, 사람이 많은, 먹고살기 치열하고 바쁜 도시다. 그래서 못 느끼고 있었던 나의 이런 부분들을 우연히 미국 올랜도 디즈니에서 느꼈다.

남들보다 빨리 가야 하고, 내가 먼저 줄을 섰는데 뒷사람이 나보다 빨리 타고 하는 모든 상황들이 몹시 신경 쓰였다. 나는 이 휴가를 제대로 즐긴 게 맞을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사람이 많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 거의 모든 놀이기구를 1-2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작은데 사람 많은 도시에서 자라서 그런 걸까. 어릴 때부터 나도 모르게 남들과 경쟁하며 그들을 이겨야만 하는 경쟁사회에서 자라서 그런 걸까. 심지어 나는 외동에다가 부모님이 전혀 그런 걸로 부담을 준 적이 없는데도 많은 사람이 모이자 나도 모르게 긴장하며 약간의 전투태세를 갖추게 됐다.


물론 사람이 많아도 여유 있는 한국인들도 있겠지. 

퇴근하고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에 굳이 비집고 타지 않고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겠지. 

손님 많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나보다 늦게 주문한 테이블이 먼저 음식이나 음료를 받아도 그 사실을 눈치 못 채는 사람들도 많겠지. 

이 글을 읽으며 '너만 그런건데 그게 한국인인거랑 뭔 상관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이 글을 다 쓰고 보니 문득 드는 생각. 

그럼 블랙프라이데이나 박싱데이 때 문 열자마자 뛰고, 옆에 사람 밀치는 미국인들은 뭐야. 

그냥 디즈니에는 그렇게 여유 있고 느긋한 사람들만 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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