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밴쿠버 영화인 쑤님
작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 행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우연히 친구가 "이 분도 한국인이래"라고 소개하여 처음 쑤닝을 만났다. 그녀의 엄청난 영어실력에 나는 당연히 그녀가 교포일 거라 생각했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이민자로서 미술, 영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잠깐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밴쿠버에 사는 그녀가 친구 결혼식으로 잠깐 토론토에 왔을 때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꽤 길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언젠가 대형 극장에서 그녀가 감독한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꼭 올 것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밴쿠버에서 영화연출을 전공 후 조연출, 통역으로 쭉 일하다가 이제 막 제 영화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영화감독 쑤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캐나다로 왔어요. 특별한 계기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제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면 한국에만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의 문이 열릴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요.
처음엔 가족들과 함께 왔다가,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따지고 보면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거의 쭉 캐나다에 혼자 살았네요. 대학교 2학년 때 밴쿠버로 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낯선 도시에서 혼자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게 한편으론 설레면서도 참 외로웠던 것 같아요. 전공 특성 때문인지 한국인 친구를 사귈 기회가 별로 없었어서, 아직도 가끔 한국 사람 친구를 사귀게 되면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이에요. 다른 나라에서 혼자 이민 온 친구들하고 특히 이런 외로움과 서러움에 대해 많은 공감을 나눴어요. 아플 때나 명절 때 (특히 크리스마스) 제일 가족들이 그리운데, 그럴 때마다 친구들하고 함께 뭉쳐서 최대한 즐겁게 보내려고 해요.
솔직히 오랫동안 적응하느라 바쁘게 살아서 크게 향수병에 대한 생각을 안 하고 살았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향수가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코로나 적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한국에 갔었는데, 갑자기 갈 수 없게 되니까 더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코로나가 끝난 지금은 자연스레 더 바빠져서 예전만큼 한국에 자주 가지 않는데, 그래서 그런가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걸로 한국 콘텐츠랑 브이로그를 계속 틀어놓기도 해요. 한국 친구들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하고요.
타지에서 혼자 산다는 건 향수나 외로움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 같아요. 완전히 극복하는 건 힘들겠지만,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 시나리오를 쓸 때나 다른 창작활동을 할 때 그런 감정들을 많이 녹여내면서 마음을 달래기도 해요. 어딘가에서 공감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 테니까.
전 운이 좋았던 게, 엄마가 영어에 관심이 높으셨어요. 엄마 말씀에 제가 어렸을 때는 영어 유치원 같은 것도 아직 없을 때라 다른 어머니들은 영어 조기교육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엄마 친한 친구분들 중에 당시 해외에 살고 계셨던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 도움 받아서 영어 책, 비디오 같은 걸 사서 계속 보여주셨대요.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입시 위주가 아닌 일상 회화, 재미 위주의 영어를 배웠어서 영어에 대한 흥미가 참 높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저는 ESL 없이 바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래도 현지에서 쓰는 영어는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랑 차이가 있어서, 처음 유학 왔을 때 TV를 정말 많이 봤던 것 같아요. 특히 시트콤 프렌즈를 정말 백번이고 돌려 봐서, 대사도 외울 정도였어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한국인 친구들이 별로 없기도 했어서 계속 캐나다인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가 편해진 것 같아요.
한국에 살 때는 입시나 내신성적에 정신을 쏟느라 모르다가 캐나다에 유학 와서야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어요. 미술, 음악, 공연예술 다 좋아했는데 그걸 한 번 합쳐보려고 선택한 게 영화예요. 영화를 전공하고 나서는 혼자 힘으로 영주권을 따야 했어서 계속 일에 집중하고 살다가, 이제야 다시 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올해만 벌써 두 번째 단편영화를 제작 중에 있는데, 그걸 아무 탈 없이 하고 싶었던 대로 해내고 싶고, 앞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혹시 밴쿠버에 계시는 분이 있다면,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