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는 아이를 잘 키우고 있을까?
TV를 켜자 뉴스에서 분개할 만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TV를 켜자 뉴스에서 분개할 만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고객으로 보이는 어떤 여성이 직원을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고 머리채를 잡아 끄는 모습 이 화면에 잡혔다. 직원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호텔 동료들의 시선이 TV 화면에 멈춰 섰다. 모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화면 속의 그 여성은 매장 직원에게 '여기서 산 화장품을 쓰고 두드러기가 났잖아 xxx아!' '내 피부 책임져! 죽여버린다 xx아!'라며 욕설과 폭언을 쏟아냈다. 분에 못 이긴 그 여성은 급기야 직원을 향해 화장품을 집어던지며 위협을 가했고 겁에 질린 직원은 어떠한 대처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여성은 화장품을 직원의 얼굴에 들이대며 먹으라는 말까지 했다. 다행히 또 다른 직원의 신고로 그 여성은 폭행 및 업무방해죄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고 뉴스 앵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갑질의 천태만상과 도덕불감증을 꼬집으며 보도를 마쳤다.
주변에 앉아있던 동료들 모두 혀를 내둘렀지만 그렇게 놀랄만한 뉴스거리는 아니었다. 호텔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상처 받은 백화점 직원의 속상한 마음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왠지 씁쓸한 마음과 함께 식사를 마친 나는 다시 근무지로 복귀를 했다.
오후 3시를 넘어설 무렵이었다. 진한 눈썹에 머리가 반 정도 벗어진 40대 중반의 한 사내가 프런트 데스크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묵묵부답이다.
"고객님 체크인 이십니까?"
나와 눈도 마주치길 거부하는 그 중년 남성은 커다란 장지갑을 뒷주머니에서 꺼내더니 자랑이라도 하듯 그 안에 꽂혀있는 다수의 신용카드를 내 앞에 펼쳐 보였다. 그는 그중에 하나를 손 끝으로 스윽 빼고는 엄지와 중지 사이에 카드를 끼워 넣더니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조용히 카드를 받아 든 나는 신용카드에 박힌 이름을 시스템에서 조회해 보았다. 오늘 체크인 예정 고객이었다.
"김진상(가명)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희 호텔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번이 첫 방문이시네요?"
"..............."
아니 더위를 드셨나 그 남자는 여전히 가타부타 말이 없다.
'저기요? 들리시나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나는 그 일격의 한마디를 집어삼켰다.
환한 미소를 보이는 내 얼굴 표정과는 달리 손에 쥐어진 마우스는 자연스럽게 층이 높고 뷰가 좋은 객실들을 휘리릭 지나쳐 적당한 층, 적당한 객실에 멈춰 섰다.
"네 여기 서명 부탁드립니다 고객님!"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등록카드를 내밀고는 객실 키를 뽑아 호텔 이용 안내서와 함께 그에게 건넸다. 이어 부대시설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드리려 했으나 예상대로 그는 객실 키를 내 손에서 낚아채고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곧이어 로비에서 기다리던 6살가량으로 보이는 아들과 와이프와 함께 객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게 보였다.
한 2시간이 흘렀을까. 교환원에서 전화가 왔다. 그 고객 방에 정전이 발생해서 다른 객실로 모셔야 한다는 얘기였다. 비상전력이 항상 준비되어있는 호텔에 정전이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제가 생겨 정전이 발생한다 해도 한 객실에서만 정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멀티 어댑터가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고객들의 잘못된 어댑터 사용으로 객실의 차단기가 내려가 아주 가끔 정전이 일어나긴 했었다. 요즘에는 그런 일도 드물고 그 객실만 전기가 나갔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어쨌든 재빨리 새 객실을 찾아 키를 준비해 벨맨을 올려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객실을 옮겨 준 벨맨이 내려왔고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 고객 많이 화나셨니?"
"그런 것 같진 않고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짜증 섞인 표정만 짓고 계셨어요."
"그래? 그럼 일단 정전 원인부터 파악하고 객실에 과일이라도 올려드리자."
먼저 사태 파악을 위해 외부적인 요인을 찾아보고 정전이 일어난 객실로 엔지니어를 올려보네 내부적인 문제도 살펴보게 했다. 그 결과 외부적인 요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객실 내에서는 차단기가 내려가 있는 걸 보니 과부하가 의심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옮긴 그 손님 객실에서 정전이 됐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엔지니어와 함께 올라가 객실을 직접 확인해봤다. 원인은 쉽게 밝혀졌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과부하였다. 객실 한쪽 구석에는 문어발식 전기코드에 여러 전기기구들이 꽂혀있었다. 미니 선풍기며 고데기, 면도기, 게임기 등 굳이 한 곳에 꽂지 않아도 될 기구들이 한꺼번에 꽂혀 있었다. 차단기를 올리니 전기는 곧장 정상으로 들어왔고 고객께는 문어발식 코드 사용을 지양해 달라고 정중히 말씀드리고는 객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 고객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단톡 방에 고객 응대 시 조심해 달라는 공지를 띄웠다.
호텔 창밖으로 어느새 해는 가라앉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지날 무렵 그 객실에서 다시 한번 연락이 왔다는 교환원의 보고를 받았다. 이번엔 또 뭘까 조마조마했다. 나는 다시 객실로 전화를 걸었다.
"저기 우리 방에 침대가 두 개 있는데 좀 붙여주세요."
"아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안전상의 이유도 있고 침대 구조상 두 개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아 글쎄 집에서 우리 가족 셋이 붙어 자는 습관이 있어서 그래요. 침대 좀 붙여줘요."
나는 한껏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런데 어쩌죠 고객님. 말씀드렸듯이 안전상의 이유로 침대를 붙이는 건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지난달에 갔던 모 호텔은 바로 해주던데 뭔 안전상의 문제가 있다고 그래요? 고객이 요청하면 들어줘야지 안 되는 게 어딨어?"
고객은 타 호텔들을 운운하며 왜 이 호텔만 안되냐고 억지를 썼다. 침대를 넓게 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전과 연결된 문제이니만큼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의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 고객은 말없이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다행히 그날 밤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사건은 다음 날 발생했다.
즐거운 호캉스를 보내기 위한 팁
"Manner makes a nice room!"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객들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줄 수 있다. 호텔마다 또 시기에 따라 조금씩 상이해서 하나하나 말로 풀어놓을 순 없지만 중요한 사실은 데스크 직원들에게 매너를 보여주면 그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서비스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들은 대부분 고객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조금만 공감해주고 친절을 베푼다면 좋은 객실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잊지 못 할 호캉스를 보낼 수 도 있을 것이다. 또 체크인 전 프런트 데스크 직원들을 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너무 나이가 어리거나 융통성 없고 까다롭게 보이는 직원들보다 조금 숙련돼 보이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직원을 찾아가는 것이 그런 서비스를 받을 확률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