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드의숲 Feb 21. 2019

호캉스 가족의 두 얼굴 2

훌륭한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우선

 다음날 오전 그 객실에서 또 한 번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애가 다쳤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전화기 너머로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나는 다급히 객실로 뛰어 올라갔다. 객실에 도착했을 땐 아이는 다리를 부여잡고 엄마 품에 안겨있었고 울음을 그 친 상태였다. 다행히 많이 다쳐 보이진 않았다. 


"고객님, 아이는 좀 어떠세요?"


그때부터였다. 중년의 그 고객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분노에 찬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어떻긴 뭘 어때! 아이가 놀다가 침대 사이로 다리가 끼어들어가 다쳤다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어떻게 보상할 거야? 쉬러 왔더니 정전이 되질 않나 아이가 다치질 않나!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호텔 운영을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이 모양이야!" 


 객실을 둘러보니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전날 침대를 붙여주지 않자 밤사이에 그들은 스스로 두 침대를 붙여놓았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이가 많이 다쳤나요? 일단 저희가 병원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됐어! 우리가 아는 곳으로 갈 거야!"


"그럼 저희가 그 병원으로 모셔 드리겠습니다. 일단 병원부 터가셔서 진료를 보고 치료비...” 


치료비 얘기가 나오자 얼굴이 붉어진 손님은 내 말을 끊더니 얼굴을 들이밀고는 삿대질을 하고 버럭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야! 지금 병원 치료비가 문제야? 제정신이 아니네! 애가 다쳤는데 돈으로만 보상이나 할 생각 하고 뭐 이따위 호텔이 다 있어! 총지배인 나오라 그래!" 


 애가 다쳤는데 서둘러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안 하고 총지배인 타령하는 걸 보니 아이가 응급상황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는 겉으로도 멀쩡해 보였다. 그리고 손님의 의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상황 판단을 마친 나는 적당히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예의를 갖춰 응대를 이어나갔다. 


"먼저 여러 불편을 끼쳐드린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애초에 붙일 수 없는 침대였는데... 현재 총지배인은 해외 출장으로 부재중이라 제가 대신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과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우리 애 다치고, 정전사고 어떻게 보상할 거야?  아까운 이 시간과 내 기분 잡친 건 어떻게 할 거야?"


 순간 나는 격해지려는 감정에 거리를 두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이 곤혹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병원 얘기만 하면 화를 내며 가지 않겠다고 하고 치료비도 필요 없다고 하니 일단 병원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체크아웃이 오늘이니 객실 업그레이드도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객실료를  할인해 주는 좋은 방법이 있지만 호텔 내부에선 결코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재무부에선 이미 발생한 매출에 손을 대는 것 자체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고객 접점에 있는 오퍼레이션 부서들이나 마케팅 부서를 중심으로 호텔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재무가 우선인 낡은 경영방식을 가진 호텔들은 그래서 항상 레드오션에서 허우적댄다. 고객 불편사항이 있어도 재무와 관련된 업무의 효율성과 편리성 그리고 돈을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에 서비스의 질이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업무절차를 따르다 보면 고객만족과는 영 거리가 멀다. 


 아무튼 최후의 보류로 무료숙박권도 있지만 그럴 권한은 내게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내가 꺼내 든 카드는 이거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허락해주신다면 다시 한번 고객님을 저희 호텔에 모시고 싶습니다. 다음에 방문해 주신다면 더 좋은 객실로 업그레이드해 드리겠습니다." 


"이봐 당신 같으면 여기 다시 오겠어? 그런 거 필요 없고 이대로는 호텔비 못 내겠으니까 알아서 해'' 


그가 원했던 건 바로 무료 숙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객실료 다 빼주고 그냥 보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재무부장이나 객실 부장에게 한숨 섞인 질타의 목소리만 들을게 뻔했다. 나는 그때부터 1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얼르고 달래며 끈질기게 그를 설득했다.


"네 선생님 얼마나 속상하실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같아도 가만있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음번에 선생님이 방문해 주신다면 특별히 VIP가 묶는 스위트 객실로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이런 불편을 끼쳐드려 너무나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고객도 체념을 했는지 그제야 내 제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도 가족들과 좋은 시간 보내려고 왔는데 자꾸 불편한 일을 겪게 되니 화가 안 나겠어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목소리 톤이 확연히 줄어든 그를 보고 나는 머리를 더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 


"네 저도 그 기분이 어떠실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서비스할 기회를 주신다면 다음번엔 고객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이 있으니 언제든 연락 주세요 선생님!"


"저도 당신한테 무례하게 행동하는 거 마음 편치 않습니다. 이번 투숙은 실망했지만 다음엔 잘 좀 준비해주세요." 


"네 물론입니다. 아무튼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릴게요 선생님!" 


 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 방식은 어디까지나 '컴플레인 고객을 충성고객으로'라는 슬로건에 따라 호텔에서 직원들에게 종용하는 컴플레인 처리 방법이었다. 또다시 그들을 응대해야 하는 불편함은 직원들 스스로가 감수해야 한다. 회사 측은 그래서 월급을 주는 것 아니냐고 말할 뿐이었다.


 사건을 일단락 마무리짓고 객실을 빠져나와 복도로 향하는데 방 안에서 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빠 나 잘했어? 다음에는 어떻게 연기할까? 근데 이제 내가 발연기하는 건 앞으로 못 써먹겠네. 정전도 그렇고."


 순간 입에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전날 뉴스에서 보던 백화점 점원이 떠올라 그래도 머리채 잡히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냐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얼굴 한쪽에서 쓴웃음이 번져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득 그 객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위인전 시리즈가 눈앞에 선연했다. 아마도 그 아이의 책이었을 것이다.


 훗날 그 아이의 가슴에 오늘 있었던 일이, 그 아버지가 보여주는 일상들이 어떠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어쩌면 훌륭한 아이로 키우는 것보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비록 오늘은 자빠지고 깨져 주검이 된 양심이지만 그 아이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양심이 잘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