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이백숙집 벽에 걸린 능이 버섯의 효능 안내판 같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참여했다고 하여 영화 '계시록'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특정한 상황에 놓인 어떤 인물이 있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갈등이 시작된다. 갈등은 점점 고조되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해소와 결말에 이른다. 이 모든 과정을 설계하고 연출을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 보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봉준호나 박찬욱, 허진호 같은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모든 설계와 흐름이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메세지가 있고 그 메세지를 향해 어떻게든 결말에 도달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노골적이다.
메세지는 심리학자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전해진다. "이 세상의 비극은 대부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악마, 괴물, 이런 것들 다 인간이 스스로 편의로 만들어낸 것에요. 우리... 보이는 것만 봅시다." 그리고 영화는, 복합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오큘러스 창문'을 화면 상단에 띄운다. 나는 이 메세지에 적극 동의한다. 실제로 우리가 당면한 정치적 양극화나 극우 사상의 문제도 영화에서 언급된 ‘아포페니아’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달 방식이다. 마치 능이백숙집 벽에 걸린 능이 버섯의 효능 안내판 같다. "능이 버섯은 여성의 피부와 다이어트에 효과적이고..." 하지만 손님들은 그 문구를 읽지도, 감동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감독이 심리학자의 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순간, 그 메시지는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동생의 자살로 인해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성이 형사로 근무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근 교육 공무원의 정신 건강 문제를 통제하지 못한 교육계 시스템이 비판받고 있는 것처럼, 경찰 조직에서도 이런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목사의 아내가 개인 트레이너와 바람을 핀다는 설정도 다소 개연성이 부족하다. 보통 개척교회의 목사는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그의 아내는 헌신적인 희생으로 남편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개척교회 목사의 아내가 트레이너와 바람을 핀다고? 감독이 기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개척교회의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결국 이 설정은 이후 남편인 목사가 아내의 죄를 고백하도록 강요하는 장면 즉, 죄악을 심판하는 자로서의 권능을 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억지스러운 캐릭터다.
형사가 범인의 일기장을 보며 단서를 찾으려 할 때, 기막힌 타이밍에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 온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마치 친절한 해설자처럼 단서를 풀어준다. 이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상적인 장면도 있다.
목사는 대형 교회 목사 자리를 위한 계시에 사로잡혀 있고, 형사는 동생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를 ‘옵티컬 일루전’ 현상을 이용해 연출한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