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서포터즈 활동 - 동아시아 출판사 서포터즈 6기
발표 당일 밤 11시. 우렁차게 소리를 내도록 설정해 놓았던 핸드폰을 진동 모드로 바꿨다. 늘 진동모드 아니면 무음 모드로 설정되어 있던 것이 한스럽기라도 했나? 오랜만에 무음 모드에서 탈출한 핸드폰은 소리 내는 것이 자랑이라도 되는냥 시끄럽게 삐롱 거리며 오늘 하루 신나게 여기저기서 내게 온 소식을 퍼 날라주었지만 끝내 내가 기다리던 소식은 전해주지 못했다. 그 소식이 도착해야 할 시간은 한참 지나 버렸으니, 핸드폰은 이제 더 이상 삐롱 거릴 이유가 없었다.
내 터치 한 번에 핸드폰은 짧게 '징-' 하더니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게 됐다. 그와 함께 내 마음도 무음 모드에 들어갔다. 어쩌면 이 서포터즈에 선정돼 신나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 글을 누군가와 나눌 생각에 마음이 시끌벅적했는데, '지희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고요해진 마음과 함께 하는 밤, 어쩌면 편안해진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개운했다. 머릿속 행복 회로를 그동안 너무 풀가동해왔나 보다. 오히려 탈락을 해버리니 행복 회로가 일을 멈췄고 덕분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지금부터의 나에게 '후련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탈락'이라는 결과를 마주했지만 이 결과가 지금의 나에게 합당한 결과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나름 최선을 다해 신청서를 써냈지만 비관적인 결과에도 마음이 쓰리진 않았기에 위와 같은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오히려 내 위치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되었다고, 동시에 앞으로 더 열심히 뭔가에 도전하자는 동기부여가 된 경험이었다고 편안히 자위할 수 있었다. 탈락의 순기능에 대해 곱씹으며 앞으로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줄 준비를 해야겠다 마음먹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7월 13일. 단단해진 마음을 붙들고 엄마와 전주로 향했다. 몇 년 간 왕래를 못한 고모네를 만나러 가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여행 당일 아침 고모가 정확한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아서 우리 모녀는 일단 전주의 한 초등학교를 목적지로 찍고 길을 떠났다. 정말 오랜만에 휴게소 우동도 먹고 엄마 옆에 앉아 드라이브를 즐기니 가슴이 뻥 뚫렸다. 행복에 젖어들던 시간, 드디어 고모가 목적지를 알려 보냈고 나는 그 목적지를 지도 앱에 찍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는데...
"허어어어억!!!"
"왜?!! 무슨 일이야?"
차 안에 공기란 공기는 다 마셔버리겠다는 기세로 숨을 들이마시는 날 보며 우리 엄마도 토끼눈이 되셨다. 그런데 정말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문자가...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보낸 서포터즈 선정 문자였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왜 지금? 동아시아 서포터즈 6기 선정 문자가 와야 할 날짜는 7월 6일이었고, 지금은 7월 13일이 아닌가! 선정 날짜가 한참 지나버린 지금에서야 나한테 이런 문자가 온 이유가 뭘까! 설마 보이스피싱이 아닐까? 저 문자에서 요구한 대로 답장을 보내면 해커가 내 개인정보를 다 빼내버리는 기술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다가 나는 동아시아 서포터즈도 못 되고 내 개인정보만 잃은 채 광광 우는 거 아냐?
파워 N 성향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며 굴러들어 온 행운도 발로 차 버릴 위기의 순간, 그제야 나는 동아시아 출판사의 인스타그램을 찾게 되었다.
알고 보니 동아시아 출판사에서 서포터즈 모집에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신청서 검토가 늦어진 관계로 서포터즈 선정을 조금 미루게 되었다, 기다리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전하며 다음 주 중으로 선정되신 서포터즈 분들께 따로 연락을 드리겠다는 게시글을 올렸었고 그다음 주 중이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SNS와 담쌓고 살아온 똥고집 덕분에 서포터즈도 한번 못 해 본 채 졸업한 미디어 전공자는 이제는 서포터즈 신청을 한 출판사의 SNS 게시물을 꼼꼼히 보지 않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놓쳐버렸던 것이다...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자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났다. 허, 허... 나 정말 바보 아닐까? 이런 머저리를 서포터즈로 써도 동아시아 출판사는 괜찮은 걸까?
많은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그중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문장은 '애당초 이 출판사는 왜 나를 서포터즈로 뽑았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분명 간절한 마음으로 신청을 하긴 했지만 당최 왜 나를 뽑은 건지 나조차 납득이 안 됐다. 나는 나를 서포터즈 생태계에서 최약체로 규정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실 준비를 끝냈었는데. 아니, 이미 원샷으로 들이켰는데...
그러다가 순간 팔로워와 SNS 규모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있는 사람은 서포터즈 담당자님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전이 중요하다,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초심이 있다, 팔로워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홍보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실컷 떠들어댔던 내가 오히려 나를 진심과 초심을 통해 바라보지 못 한 채, 팔로워와 SNS 규모만으로 나를 미리 탈락시켰던 것이다. 타인은 관대한 시선을 통해 바라봤던 내가 나를 바라볼 땐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로 점철된 시선을 던졌다. 도대체 왜 진심을 다 해서 서포터즈 신청서에 답하고 나를 어필했는지, 그 이유를 퇴색하고 있던 것은 나였다.
그리고 서포터즈 담당자님께 괜한 감사의 마음도 들었다. 내가 발신한 신청서를 수신한 사람이 꼼꼼하게 읽어주었다는 세심함에 괜히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다짐을 되새겼달까. 적어도 SNS 규모만으로 서포터즈를 뽑는 기업이 아니라는 생각에 몽실몽실한 충성심이 피어났다.
어쨌든, 나는 내가 동아시아 서포터즈 6기로 선정된 것에 마음껏 기뻐했다. 안 그래도 신명 났던 드라이브 길은 더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물론 안전 운전하면서!) 시한부 운명의 인스타그램에 올라갈 게시물들이 더 다채로워질 생각에 설렜다.
무엇보다 나도 무언가를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인받는 과정은 내 생각보다도 더 짜릿했다. 심지어 그 과정조차 참 극적이었다. (역시... 잊고 있다가 받는 무언가가 가장 짜릿하다..)
과연 내가 상상한 만큼의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