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듯 가게 된 이사의 종착지
결국 집주인에게 전화를 해 돈을 받고 나가겠다고 했다. 이 월세 계약이 끝나기 전에 LH 전세임대나 취업이 된다면 중기청을 알아보고 계약이 끝날 때쯤 이사를 가려고 계획 중이었는데, 역시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생각보다 더 없는 것 같다. 당장에 서울에서 집을 구해서 이사를 가자니 만약에 LH에 당첨이 되면 또 집을 구하는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는 데다 복비, 이사비용까지 날려먹는 셈이니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두통약을 먹고 고민을 해야 머리가 굴러갈 정도로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상황이 야속하기만 했다. 당장에 취업 생각도 해야 하고, 이것 저것 고민할 문제가 산더미인데 거기에 더 큰 산이 다가와 버리다니...
머리를 식힐 겸 겨우 샤워를 하는데, 욕실 바닥 하수구에도 문제가 생긴 건지 물이 잘 안 빠져 욕실 바닥에서 물이 넘실댔다. 한쪽에선 비가 새고 한쪽에선 물이 넘실대는 꼴이라니.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이 집이랑은 하루라도 연을 빨리 끊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렸다. 엄마 앞에서는 태연한 척을 했다. 그 전 날, 엄마가 울었던 것이 생각이 나 마음이 안 좋았기에 열심히 척을 한다고 했지만 엄마 귀에는 딸의 불안함과 답답함이 다 들렸나 보다.
"지희야, 집으로 내려올래?"
어쩌면 나는 이 말을 그렇게 듣고 싶었던 걸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에게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 답답함이 풀렸다. 한 번 서울에 올라오니, 고향에 내려간다는 선택지가 쉽사리 골라지지 않았는데 엄마가 먼저 정답을 골라주시자 슬픔과 답답함만 가득했던 순간이 설렘으로 칠해졌다.
벅찬 가슴을 안고 이어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자 아빠는 좀 더 고민을 해보라고 하셨다. 당장 목포에 내려왔다가 바로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고 집 문제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해결하면 안 된다고 하시며 재고를 권하셨다. 아빠가 하는 말도 전부 맞는 말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모르겠다. 피곤한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더 미안해졌고, 이성적인 해결책보다 감정적인 위로를 바라고 있던 순간이라 그런지, 순간순간 울컥했다. 하지만 집 문제를 가벼이 생각할 수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 동생과 남자 친구에게 고민을 나눠가 주길 청했다. 감사하게도 내 요청에 응답해 준 동생과 남자 친구 역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선택지에 한 표씩을 던져주었는데 심지어 동생은 본인 집으로 이사오라는 고마운 말까지 해주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도 오랜 고민을 한 끝에 결국 고향인 목포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잠시라도 엄마 아빠와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실 부모 자식 간이라도 자식이 좀 크고 나면 얼굴 보고 사는 날이 많지 않다. 고등학생 때는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서울로 올라와 버리니 부모님 얼굴은 날을 잡고 고향에 내려가야 볼 수 있는 얼굴이 되어버렸다. 단짝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랑 언젠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서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졌지만 오히려 실현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한 살, 한 살 얼레벌레 먹어가며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조금씩 생기는 것을 보니 소망은 소망으로 남겨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분노 가득한 기회긴 하지만 엄마 아빠랑 잠시나마 같이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 이 기회를 잡는 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길을 찾아보고 있는 요즘, 부모님과 부딪힐 일도 분명 있을 거다. 우리 아빠는 아직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인스타툰을 연재한다는 것도, 영상 편집을 독학하고 있다는 것도, 즉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서 막상 고향에 가서 노트북이랑 아이패드만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면 "내 딸이 왜 저러고 있을까."싶으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딸인 내가 아빠한테 먼저 살갑게 이것저것 알려야 하는데, 그것도 고향에 내려가서 해내야 할 하나의 미션이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불안함보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겪고, 꺾이고, 상처받아도 나를 다시 받아줄 수 있는 사람과 장소 그리고 환대가 어딘가엔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느꼈다.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애인과 내가 다시 돌아갈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 선뜻 본인의 주거공간을 나눠주겠다고 한 동생, 그리고 곧 진행할 이사를 도와주신다고 해주신 셋째 삼촌, 내 상황에 공감해 준 친구들까지. 비록 나는 많은 분노를 남기며 곧 이 집을 떠나겠지만 대신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배웠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돌아올 곳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