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오면 할아버지 아버지 세 누나들 세 동생들과 내가 태어난 곳에 서서 한참 서성여요. 지금 밭이 되어 푸성귀와 배추들과 남은 쪽파가 한겨울을 어찌 건너고 있네요. 저들의 월동은 가볍지도 흐트러지지도 않아요. 뿌리에 내리 박힌 숨결로 온몸을 바싹 말리고 태워 기어이 흙을 향해 숨 붙들고 있어요. 갑작스레 난데없이 밭 한 귀퉁이 서 계시는 아버지가 보이네요. 아버지는 네 살에 아버지의 엄마를 보내고 할아버지의 애틋함과 새 할머니의 굳은 손길 속 자라셨지요. 나는 네 살 아버지는 서른둘의 나이에 할아버지보내셨지요. 엄마 잃은 아가의 두텁고 속정 뜨거웠던 아버지의 삼십 년이 무너진 그날에 아버지도 오래 오래 아프셨지요. 나, 네 살의 아가는 기억할 수 없겠지만 삼 년의 세월을 지속한 삼년상喪 치레로 일곱 살 겨울까지 있었으니 제게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할아버지 사랑방 앞마당 한 모퉁이 짚새들 엮은 가마니 덮고 가린 기둥 네 개 세운 작은 집, 영호靈戶. 아실까요? 혹 보셨어요? 영호? 영혼의 집이네요. 아침마다 밥 한 그릇 놓고 향을 피우고 그리움을 달래고 호곡하던 곳. 아버지의 웅얼거리던 눈물의 곡소리 들려요. 아버지는 삼년상 치르던 시절 내내 아침마다 산 너머 족히 한 시간은 올라야 하는 할아버지 산소를 매일 다녀오셨다 들었어요. 그 간곡하고 아픈 애통을 어찌할 수 없었겠지요. 영호에 제를 올리고 산소로 달려가던 그 젊은 슬픔이 스미어오네요. 내게도 영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일매일 삼 년은 울고 묵묵해도 좋다 허락해 주는 공공의 묵인을 당하고 받는 거지요. 이제 그만 울어도 돼, 적당히 하고 정신 챙겨서 잘 이겨내, 엄마도 너무 슬퍼하면 싫어할 거야, 같은 이런 말들, 생각들 무색하고 퇴색하여 맘 놓고 울고 애통해할 영호와 삼년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삼 년이 지나면 이 그리움과 슬픔들 옅고 바래고 지겨워 멀리 떠나 있으려나요? 부디 그러려나요? 문 앞 장식장 옆 선반에 놓인 엄마의 사진을 아침마다 보고 봅니다. 이것이 삼년상喪 제際, 이곳이 영호靈戶일까요? 집터의 크기는 졸아들고 대밭은 사라지고 큰 바위도 옮겨지고 감나무 동백나무 밤나무 한 그루 없지만 눈감으면 환해요. 어제처럼 눈에 선연해요. 그렇게 삼 년이 지나고 삼십 년이 지나면 엄마도 아빠도 이 날들도 모두 눈에 환한 그리움으로 잊히려나요?또 저렇게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네요.
집터가 밭이 되었어요. 그리움은 언제나 마음 속에 서 있겠지요. 집과 마당과 대밭과 동백나무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