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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잇 Nov 29. 2023

국제 연애 | 영어 울렁증인 내가 국제 연애 하는 법

언어의 장벽은 높고 높아서

어느덧 국제 연애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나는 아직도 심각한 영어 울렁증과 외국인 공포증을 동시에 앓고 있다.

캐나다인 남자친구와 연애를 한다고 하면 되돌아오는 흔한 반응 중 하나는

“그럼 너 영어 잘해?”, “언어를 배우기에 제일 빠른 방법은 연애라던데, 그럼 영어 잘하겠다.” 등의 반응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영어 못 해”라고 말하며 멋쩍은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그럼 우리는 소통을 어떻게 하냐고? 그냥 한다.

나는 할 수 있는 말들을 내뱉고, 그는 들은 말들을 토대로 내 말의 요점을 파악한다.

그래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길 땐, 둘 중 하나다.

말을 삼키거나, 어린아이처럼 짧게 설명해 그를 이해시키거나.

가끔은 내가 내뱉는 너무도 초보적이고, 한국스러운 어휘들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저 한바탕 웃고 이해하며 넘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와 소통하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늘 내가 하고 싶은 말에 1/10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며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고, 울고 웃으며 여느 커플과 다름없는 소통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렇게 10개월이 흐르자, 이제는 우리만의 언어가 하나둘씩 늘어 아주 조금씩 소통이 더 편해지고 있다.

느리게나마 내 영어 지식이 쌓이고, 그의 한국어 공부에 가속이 붙으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소통의 합을 맞춰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는 있었다.

바로, 그의 가족과 지인을 만나는 일.

남자친구는 나의 영어 성장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 준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신기하게도 그의 앞에서는 부족한 실력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을 내뱉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만

남자친구가 아닌 다른 외국인과의 대화는 늘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관계의 깊이가 깊어져야 가족과 지인에게 서로를 인사시키는 우리의 문화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캐주얼한 만남일 때도 서로의 가족과 지인을 만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20년 넘게 한국에서 살아와 지극히도 한국인적인 관념과 영어 공포증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처음 그의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 3개월 여 가까이 그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고 숨기에 바빴다.


남자친구 부모님이라는 존재도 어렵게만 다가올뿐더러,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라…

부담스러운 것들 투성이인 그들을 한꺼번에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은 조금은 공포스럽게까지 다가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둘러싼 가족들의 궁금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나는 그렇게 3개월 가까이를 숨어다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그의 가족들을 만나게 됐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과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을 두려워하는 내게

예기치 못한 그들과의 첫 만남은 심장 떨리는 긴장감을 안겨주었다.

‘혹시나 내가 저들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혹시나 엉뚱한 대답을 하면 어떡하지’,

‘나는 아직 영어를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이런 내가 너무나 바보 같아 보이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이러한 생각들은 순식간에 폭풍처럼 휘몰아쳐 나를 집어삼켰다.


“네가 00이구나, 너무 보고 싶었어. 만나서 반가워”

처음 그의 부모님과 만났을 때 그들은 나를 꼭 안아주며 반가움을 표했다.

그리고 한껏 겁에 질려있던 나의 걱정들은, 단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어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 예상보다 현저히 낮았던 첫 만남 난이도에 나는 안도했고, 또 감사했다.


캐나다로 다시 돌아온 이후, 요즘 나는 적어도 2주에 한 번, 잦으면 일주일에 한두 번까지 그들과 만남을 이어나가고 있다.

함께 만나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듣고 리액션하는 게 전부이지만…), 서로의 문화를 나눈다.

아직도 영어를 하기 전, 긴장을 많이 하는 탓에 말을 내뱉는 텀이 길고, 전하고 싶은 생각과 말이 따로 놀 때가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지독하게 앓고 있는 영어 울렁증과 외국인 기피증을 극복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높디높게만 느껴지는 언어의 장벽들이 나를 좌절감에 사로잡히게 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내 옆에는 늘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 주는 그와, 그의 가족들이 있다.

설령 나의 말이 느리고 어색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말할 수 있게끔 나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

이들 곁에서라면 언젠간 나도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또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


넘어지면 툴툴 털고 일어나면 되고, 무너지면 옆사람의 손을 잡고 바로 서면 된다.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또 얼마나 많은 좌절과 상심을 더 겪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용감히, 그리고 열심히 맞닥뜨려 보려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차근차근. 온 마음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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