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의 기록
발리에서 그랩을 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니 앱에서 팁을 줄 수 있는 선택지가 떴다. 가장 낮은 금액은 한국 돈으로 4~500원, 가장 높은 금액을 눌러도 2천 원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 금액이 나에겐 크지 않은데,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 팁을 얼마를 줄 것이냐에 대한 대화를 하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팁을 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물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발리에서 길을 걷다 든 생각들이 있었다.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값비싼 레스토랑과 리조트에서 소비하며 웃고 있었고, 그 옆 길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심지어 아기를 데리고 길에 앉아있는 엄마들도 눈에 띄었다. 눈앞의 장면들이 나에게 이 나라의 빈부격차를 강하게 각인시켰다.
또한 발리에서 사먹는 음식, 교통비 등에서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은 물가를 체감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와 이 나라의 경제적 수준을 비교하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지금 이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가가 낮고,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덜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게 의미 있다고 여긴 건 아닐까. 스스로를 들여다보니, 부끄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팁 문화에 대한 빠니보틀의 생각이 담긴 영상>
https://youtube.com/shorts/sadFT5QyEC4?feature=shared
이 주제에 대한 대화를 깊게 나누면서 시야가 조금 열렸다.
“그들도 정당하게 그 나라의 물가에 맞춰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거야. 우리가 특별히 동정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관광업은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이고, 사람들은 거기서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 관광객들이 이 곳에 와서 소비를 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돼."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했던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깨달았다. 팁을 많이 주려 했던 건 선의였지만, 동시에 ‘내가 가진 것이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거야’라는 주제넘은 시선이 숨어 있었다. 내가 그들의 삶을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불쌍하다고 단정 지은 셈이다. 영상에서 이야기하는 어줍잖은 선민의식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으니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종종 이런 마음을 품곤 한다. 시장에서 고단해 보이는 노인들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적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이 나에게 힘든 기억을 주었기 때문에 내가 가난과 빈곤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면 그게 즉시 안타깝다는 감정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그분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단지 내가 본 모습만으로 ‘안쓰럽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순간의 감정은 진심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은 시선일 수도 있었다.
발리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깨달음도 주었다. 동정과 존중은 다르다는 것.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는 행위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 중요한 건 상대를 ‘가난한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태도라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겪은 이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는 걸 경계하게 되었다.
여행은 결국 낯선 풍경 속에서 타인을 만나는 일이자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인 것 같다. 발리에서의 며칠 동안 나는 새로운 문화뿐만 아니라 나의 편협한 시선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시선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이 덕분에 나는 앞으로 조금 더 겸손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