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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ZNTHNQ May 29. 2020

이소라와 함께한 하루

바람이 분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1   

출근길에 이어폰이 두 귀를 막고 있지 않을 때는 라디오를 들으며 꾸벅 꾸벅 졸며 간다. 출근길은 약 한 시간 정도다. 이 시간에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몇 번이고 도전했다. 단어 외우기, 신문 사설 읽기 등등..요즘은 편히 마음 편히 졸거나 멍하니 있는다.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공상이든 망상이든 상상이든 하게 된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는 그날의 버스 기사님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버스를 타면 기사님께서 라디오를 틀어놓는다. 그럼 그날은 라디오와 함께 하는 아침이다. 그날은 라디오에서 이소라를 듣게 되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이소라의 노래를 들은 것은

바람이 분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는 라디오키드였다. 십대의 머리맡엔 이소라가 있었다. 이소라의 음악도시에서 들었던 노래들이 내 엠피쓰리를 가득 채웠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녁 10시면 라디오를 켜고 누워서 사연을 들으며 끄덕이다 잠들었던 것 같다. 수많은 사연을 들으면서 꺽꺽대며 웃다가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방송중에 이소라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나이들면 피부를 꼬집었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느려져, 요즘 내가 그래"

그것을 아주 재미있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내 피부를 꼬집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 이런 이야기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있다니. 참 행복한 기억인가보다.   

그러다 마음이 먹먹하다. 그 마음으로 유튜브에 '이소라'를 검색했다. 라이브 영상을 몇 개 보다가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렸다.   



2

퇴근 길에도 들어보았다. 이 글을 작성하는 지금도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다.

아 너무 좋다.   


3

학생도 취준생도 아닌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친구와 함께 참 많이도 걸었다.  처음 이 친구와 걷게 된 것은 친구의 다이어트 때문이었다. 친구는 헬스장에 있는 러닝머신 을 견디지 못했다. 너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서울에 있는 다리 걷기. 친구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걸었다.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걷기 다이어트로 친구가 체중을 제법 감량했다. 나도 합류했다. 우리 가진 게 두 발뿐이라며 서울에 있는 대교는 모두 걸어서 다녔다. 우리는 주로 마포대교를 건넜는데 그날은 이소라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우리는 둘다 지독한 음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크게 소리내어 불렀다.   



바람이 분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야, 이소라는 진짜 사랑이 뭔지 아는 것 같아, 정말 시인이야 시인


우리는 그 말을 한 뒤 꺄르륵 웃었다.

그런 우리가 너무 한심하고 귀여워 한참이고 웃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잘 지낼까. 이제는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모른다. 살짝 보고 싶네.


바람이 분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를 듣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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