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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그래퍼 May 09. 2020

행운에 숫자에 대한 고찰 VII

로마의 첫 번째 조각

                                

 일 누군가가 당신이 생각하는 로마를 단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해주세요'라고 요청한다면, 그 질문에 '3*3*7 박수요'라고 답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완벽하게 어울리는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숫자들은 각각 의미들이 있다. 먼저 선행하는 숫자 3을 풀이하자면 로마는 제국이기 이전에 나라였고, 나라이기 이전에 촌락에서 시작을 하였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나라를 세웠을 당시 그는 황제가 아닌, 왕의 타이틀을 지니고 있었다. 촌락 시절에서 나라의 모습을 갖추어가던 로마의 왕들은 그 7번째 왕 '거만한 타르퀴니우스'에게서 계보가 끊기게 된다. 바야흐로 왕정이 막을 내리고, 공화정이 막을 올린 시기.
 공화정의 닻을 단 로마는 순풍순풍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원로원 다수의 머리로 이루어진 공화정 체재는 제국에 반열에 발을 내디딘 로마가 갖기에는 제약이 많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를 관망하던 남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Gaius Julius Caesar)' 시저는 공화정의 한계를 보았고,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후계자였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에게 넘겨주어 로마에게 제국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제국은 476년 고트족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이어진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476년 로마제국이 멸망할 당시 마지막 황제의 이름이 왕정과 제정시대의 문을 열었던 초대 왕과 황제, 로물루스와 아우구스투스를 합쳐 쓴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였다는 점이다. 이처럼 로마는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3가지 정치체제를 구축했으니 왕정, 공화정, 제정이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뒤에 오는 3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자들은 로마가 3가지를 통해 세계를 제패했다고 한다. 첫 번째가 뛰어난 황제들의 통솔력과 끈끈함 유대감을 통해 세계로 뻗어갔던 로마의 군사. 더불어 제국의 영토에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던 로마의 시민권.(로마인들은 로마 민족이라 불리지 않았다. 로마 시민이라 불렸다) 그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제국의 법의 테두리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전 영토에 동일한 법을 적용한 것이 두 번째, 그리고 마지막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공인한 것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길'이 추가되어 4가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3가지가 로마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3*3을 끝냈으니 마지막 7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예전 학부시절 교양 교수님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자네는 인류 최고의 발견이 뭐라고 생각하나?" / "불이요."
 "그렇다면 자네는 인류 최고의 발명은 뭐라고 생각하나?" / "0이라는 숫자의 개념이요"
 무한대를 향해가던 숫자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 한층을 높인 개념. 당시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였는지 그들에게 놀랍고, 또 고마움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 세상에는 나처럼 숫자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더러 있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숫자들을 가지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3, 14라는 두 숫자를 좋아한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각설한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3과 7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7이라는 숫자는 유독 행운의 숫자라고 알려져 있다. 왜 7이 행운을 상징하는지 의문점이 많은 나였다. 로마에서의 삶이 3년 차에 접어든 요즘 그 이유가 로마인들이 사랑했던 숫자가, 그리고 그들과 가장 연관 많은 숫자가 7이었기에 그런 이미지가 생겨난 건 아닐까?라는 즐거운 상상력이 이 글을 적게 만들었다.

 7이 행운의 숫자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우주에 지구를 제외한 7개의 천체가 존재한다 믿었다.(태양, 화성, 수성, 달, 목성, 금성, 토성) 하여 7이라는 숫자를 신성하게 믿었다. 특히 서양에서는 종교적으로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만들고 7일째 휴식을 가지셨기에 일주일(7일)에 마지막을 휴일로. 종교적으로 3의 의미는(성 삼위일체), 4의 의미는(동서남북, 혹은 물, 공기, 불, 흙), 그리고 이를 더한 수는 하늘과 땅의 완벽함을 상징하는 숫자라는 점이 7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 동양에서도 7은 특별한데 불교의 제례의식인 49제도 7*7의 숫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도 7월 7일인 듯 7이라는 숫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행운의 숫자로 남아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문명들, 아직까지도 현재에 삶과 문명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로마제국,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도 유독 7이라는 숫자를 좋아했다. 로마는 유독 7과 연관이 많은 도시이다. 로마가 처음 시작한 것은 로물루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나라를 세운 기원전 753년. 유독 테베레 강의 범람이 심했기에 평지에서의 삶을 살 수가 없었던 로마인들은 주변의 언덕에 올라가 터전을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7 언덕(팔라티노, 캄피돌리오, 첼리오, 에스퀴리노, 아벤티노, 퀴리날레, 비미날레)이었다. 세력을 넓혀가던 로마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며 왕정이 저물 때, 당시 로마의 왕은 제7대 왕이었다.                                                  


                                                                                          

<로마의 7 언덕>



서두에 언급한바 공화정의 닻을 달고 나아가던 로마의 한계를 본 한 남자가 기원전 100년 7월 12일에 태어났다.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 이 사내는 오늘날의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을 정복하는 갈리아 원정을 계획한다. 이 원정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완수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7년. 이 7년의 전쟁은 오늘날의 유럽을 창조하는 결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의 꿈은 44년 3월 15일 그를 시기하던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끝을 맺게 되는데, 그의 나이 56세였다. 불완전한 숫자라고 알려진 6을 넘어, 그가 4개월을 더 살아 57살이 되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을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갈리아 지역>



                                                                                                                                                                                                

 당시의 사람들도 그에 대한 향수가 컸나 보다. 그래서인지 로마에서 제일 뜨거웠던 그 남자에게, 공교롭게 로마에서 제일 뜨거운 달(month)에 그의 이름을 헌화했으니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는 July(7월)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이 로마는 카이사르처럼 영원할 수 없었다. 고트족 장군에 의해 로마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로물루스와 아우구스투스에서 시작한 로마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에게서 끝을 맺은 것처럼, 7로 시작한 나라는(BC 753) 7로 그 끝을 맞이하였다. AD 476년 로마는 역사의 페이지로 물러서야 했다.                                                  


                                                    <카이사르의 암살> 빈센초 카무치니 1804-1805                                                                                                                                                                                                                                                                                                                                                                                                                  

 그 이후로도 수많은 이곳의 역사에 7은 날줄과 실줄처럼 얽히고설키고, 또 서려있다. 7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이곳의 역사. 나는 오늘도 역사의 무대 위에 살고 있다. 어찌 보면 로마에서의 삶이 내게는 7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7의 도시로의 이끌림은 이미 저 위에 계신 조물주의 계획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곳으로 나를 이끌어준 지금의 회사의 이름도 7음절.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 회사에서 나는 7번째 투어를 준비 중이다.
 
 7음절의 나의 회사에도,
 7번째 나의 투어에도 행운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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