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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그래퍼 Apr 30. 2020

런던의 두 번째 조각 <Primrose hill>

프림로즈 힐

                                                                                                                                                                                                                                                                                                                                                                         


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Hill이라는 영단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의 기억이 말이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hill이라는 단어가 지닌 정확한 의미를 알려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완벽하게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hill 이란 말이지~, 어디보자.... 우리나라로 치면 동산 같은 느낌이란다" 

 "그럼 학교 뒤에 있는 저 산도 hill이에요?" 

"아니 그건 말 그대로 동산이고, 음.." 

 "그럼 hill은 산이예요?" 

"아니 그렇다고 산은 아니지. 뭐랄까... 동산과 언덕의 중간 정도의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우리나라에서는 hill을 찾아보기가 힘들단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선생님의 가르침에 반응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우리에게 반듯이 전달되었으리라 기대하셨겠지만, 그 당시 우리 반에 해외 경험이 있던 학생이 전무하던 터라 hill을 정확히 이해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10여 년을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hill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13년 나는 그 hill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 런던에서 말이다. 런던의 중심에서 북쪽에 자리한 Regent's park 바로 위쪽에 Primrose hill 이 있다. 내가 마주한 hill의 느낌은 경주의 많은 고분들(금관총, 천마총)과 같은 모양의 조금 더 큰 규모의 것들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선생님의 말이 옳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감히 예상컨데 이 정도의 구릉들은 아스팔트로 덮여 있거나,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깎여 나갔을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실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는 없다. 문화, 즉 그 사회의 생활양식은 그들이 처한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과 녹지의 푸르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어린아이들은 산을 오르지 않고도 자신들의 도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이 같은 사실들이 그들에게는 꿈과 무한한 상상력을 자라나게 할 것이다. 지금의 내가 이 프림로즈 힐에서 런던 시가지를 바라보고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자그마한 것들이 그 나라 국민들의 정서와 국민성을 만들어 낸다고 감히 예상해본다. 내가 26년을 살아온 사회는 빡빡하고 붐비는 환경 속에서 빠름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실패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이것은 마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서울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우리 국민들의 국민성과 정서와도 정확히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본 영국인들은 무언가를 조급해하지도 않고, 어떤 사실들에 근심을 갖지 않는다. 물론 단면적인 사실들이 전체인 것처럼 확대 생산하는 것은 좋지 못한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기술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것 같다. 나는 이 hill이라는 것이 그들의 이러한 정서를 대변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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