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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책방지기 Aug 24. 2024

<상실>

원제는 <The year of magical thiking>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와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미국인 입장에서는)도 그렇지만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고들에 어떤 조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평범한 날 불시에 닥친다는 사실이 가장 당혹스러운 일이다.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우리 의식 속에서나 무의식 속에 구성해 온 사건의 과정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려면 분명히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 원인은 단서도 되어야 하지만 경고의 기능도 있어야만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이런 질문에 매달린다. “모든 일이 평소와 다름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90) 


   우리는 인과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어떤 사건이 일어나려면 그에 대한 원인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저지른 사건 앞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캐내려고 하거나,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 등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 이유가 단지 뇌 속의 어느 부분이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는 사실은 한동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조앤 디디온도 한순간에 찾아온 남편의 죽음이 단지 심장마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장마비로 인한 것이었다고 해도 분명히 어떤 조짐이 있었을 것이고 혹은 유전적인 원인도 분명히 존재하므로 선제적 대응이 있었어야 했다는 자책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이 죽기 전에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그것이 죽음에 대한 조짐이 아니었을지, 죽음에 대한 예감이 아니었을지 곰곰이 되새겨보게 된다. 


   죽음 자체에 대해서도 이중적 태도를 가지는데, 갑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이미 일어난 사건이라는 인식과 함께 돌이킬 수도 있다는 마술적 사고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 “마술적 사고”야말로 드라마적 사고이면서 주술적 사고일 텐데, 상실 앞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분명 어떤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는 믿음과 함께 죽음을 공표하지 않고 신발을 놔두면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주술적 믿음을 보여준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써온 작가로서는 그런 사고의 흐름이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라짐, 부재, 상실 앞에서 이성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 극기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앤 디디온은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애쓴다. 상실의 경험으로 인한 생각의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놔두고 보면서 최대한 담담하게 기록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평소의 생각과 다른 마술적 사고에 대한 것조차 놓치지 않고 기록한다. 


    이 모든 기록은 조앤 디디온이 남편 존을 갑작스럽게 잃고 병원에 있는 딸을 간병하는 이야기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종종 떠오르는 시나 소설의 문장들도 함께 기록하고 당시의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기록도 있지만, 결국 이것은 작가가 경험한 상실에 대한 사적 기록이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비애를 느끼고 애도를 하는 과정에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마술적”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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