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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Oct 04. 2022

말하기가 두려워 글을 씁니다

아티스트 웨이, 모닝 페이지 3년 차

나는 말이 어려웠다. 

억울하거나 속상한 마음이 들 때는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실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내가 이 말만 하지 않았어도’ 같은 후회,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다짐이 되기까지. 

엄마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더 많이 혼났던 기억.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곤란하게 한 내 한마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직하면 내가 더 상처받는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솔직한 말은 내게 참 어려운 과제였다. 

좋은 사람인 척, 밝은 척, 긍정적인 척. 

나중에는 내 솔직한 마음이 무엇인지 아리송해졌다. 

성서공부를 하면서 묵상을 나눌 때도 그랬다. 

모범답안 같은 해설서를 베껴 적으면 지도 수녀님이 그러셨다. 

“태임아, 이건 묵상이 아니야.” 

내 솔직한 마음과 생각이 없는 글이 묵상일 리가 없었다. 

솔직하지 않아도 사회생활을 그럭저럭 할만했다. 

적당히 감추고 좋은 말만 했을 때 오히려 편한 면도 있었고,

꽤 사람들이 두루두루 좋아하는 두루뭉술한 사람으로 살아도 큰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반려자를 만나면서 그 부분이 엄청난 불편함으로 불거졌다. 


솔직병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솔직한 남편은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단도직입적이고, 내 얘기가 사실이 아니면 화를 내는 사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정확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묻고 또 묻는 사람이었다. 

나로 말하면 돌려 말하기 달인. 

대충 뭉뚱그리기 선수. 

그런 우리가 부딪히는 건 당연했다. 

남편과 대화하면서도 스스로 솔직하면 늘 문제가 불거지고 더 커져서 

혹 떼려다 혹 붙이고,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고 생각했다.

‘솔직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더 강화되었달까. 

말하기 싫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싸우기 싫었고, 그저 좋게 좋게 지내고 싶었는데 

남편에게는 그 방법이 통하질 않았다. 

결혼 10년 차, 

이제 제법 서로를 파악하고 조율을 해갈 법도 한데 

여전히 그 부분에서는 걸려 넘어지고 만다. 

이쯤 되면 내가 솔직해지든 아예 거짓으로 살 든 결단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모닝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고

서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절대 공개하지 않고 

매일 아침 A4 세 장을 채워 글을 쓰는 작업을 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무 말 대잔치, 

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속에서 드는 오만 가지 생각까지 끌어다 써도 

분량의 글을 채우기 어려웠다. 

끌어다 끌어다 쓰다 보니 내 안에 눌러둔 그 솔직한 생각이라는 것이, 

꺼내고 보니 별것 없더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좋은 나를 포장했지만 실은 까놓고 보니 

시커먼 괴물이 들어앉았을 것 같아 불안하고 걱정되었다. 

온갖 나쁜 생각과 말이 숨어 있을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약하고 슬프고 아픈 아이가 숨어 있었다. 

이제 그만 솔직해도 괜찮다고, 

말실수해도 그렇게 큰 일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스스로 나를 옭아맸던 사슬을 끊어내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안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궁금했고,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들었던 생각, 

느꼈던 것, 좋았던 것, 아팠던 것, 감사했던 것, 바라는 것.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을 때면 

누군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쓸어주는 느낌이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괜찮아, 괜찮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토닥토닥해주는 시간.

힘들고 슬펐던 순간에 쓰는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기쁘고 감사한 순간 쓰는 글에는 긍정 에너지가 있다.

아직도 나는 말하기가 어렵다.

사실 글쓰기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말하기보다는 글 쓰기가 편하다.

안전한 나만의 공간에서 그 어떤 생각도 다 받아내 주는

자비로운 A4 석장에게 내 마음을 꺼내어 놓는다.

써놓고 나면 그리 두려울 일도, 불안할 일도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글로 박아두니 그 형태가 눈에 보이고,

보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새벽 4시 일어나자마자

내 무의식의 몽롱함에 기대어 마음껏 발설한다.

두려움이 따뜻함으로 물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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