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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힘 Oct 07. 2022

닉네임은 김태힘

힘쓰기 달인, 힘 빼기 기술 익히기



얼마 전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작가 신청을 하고 반은 기대, 반은 걱정을 했더랬다. 누군가는 몇 번의 재도전 끝에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평소 내 글을 읽었던 글벗은 나 정도면 충분히 한 번에 뽑힐 거라고도 했으니까. 결과는? 한 번에 되었다. 기쁨과 안도. 글쓰기가 잘되지 않아 뭔가 마음을 다잡을 뭔가가 필요했던 요즘이다. 다시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었고 글쓰기의 활력은 뭐니 뭐니 해도 글벗과 독자. 내 글을 읽어줄 독자와 함께 글을 쓰는 글벗이 모인 곳이 브런치였다. 이전에는 계정만 만들어 놓고는 서랍에 글 몇 개 저장해 두고는 잊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운영하고 있는 서점 이름을 닉네임으로 하고 책방 일지 정도 써볼 요량 이었다. 작가 선정이 되었으니 다시 열심히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담아 닉네임을 바꾸었다.


힘자랑 중인 분

      

김태힘. 자랑할 것도 힘, 남는 것도 힘뿐이라. 난 정말 힘이 세다. 웬만해선 누군가와의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나의 반려인에게도.(반려인이 좀 마르긴 했다.) 힘자랑이라 하긴 우습지만 그래도 명색이 이름에 힘이 들어간다니 증명 차원에서 해보면. 일단 업라이트 피아노 정도는 가뿐히(는 아니지만 그리 힘들지 않게) 자리를 바꾼다. 가구 배치 바꾸기가 취미이니 피아노, 옷장, 책장 정도는 들고 나를 힘은 필수다. 거문고라는 무거운 악기를 두 대들고 거기에 악기 받침대(상당히 무겁다), 한복 케이스를 거뜬히 혼자 들 수 있으며, 내가 줄다리기 한 팀이 진적이 내 기억으론 없다.(만약 있었다면 제보 바랍니다.) 현재 6, 8살인 두 아들을 동시에 안아줄 수 있고 가끔, 아주 가끔 기분 좋은 아침엔 나의 반려인을 번쩍 들어 안아주는 격렬한 배웅도 한다. 여간해선 지치지 않는다. 에너지가 넘치면 넘쳤지 모자라지 않는, 아무튼 힘쓰는 일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 나야 나.


   

닉네임을 김태힘으로 쓰고 나니 힘은 있어 보인다. 문제는 힘만 있어 보이면 좀 곤란한데? 브런치 작가 이름인데. 거창하게 필명까진 아니어도 글을 열심히 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인데 뒤늦게 의미 부여하고 싶어졌다. 여태 힘자랑하고 보니 온통 힘쓰는 일뿐이다. 아니 글을 쓴다고 했는데 힘만 쓰고 사는 것 같다. 힘쓰는 일은 참 잘 해왔다. 전공인 거문고도 그랬고, 운동도 그랬다. 대학 때 교양 수업으로 수강한 골프. 기본자세, 운동신경 이런 건 모르겠고 일단 힘으로 공을 쳤다. 골프 선생님의 놀란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뭐 이런 학생이 있나? 힘 하난 대단하군! 이런 느낌. 



수영하면 떠오르는 그림책, 난데없이 그림책 추천 <여름의 잠수>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힘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예로 힘 빼는 기술이 필요한 운동, 수영이 그랬다. 성인이 되어 다시 수영 강습을 받았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힘 빼세요.”였다. 물속에서 잔뜩 긴장한 몸. 물 먹을까 봐 빠질까 봐 두려워 더 뻣뻣해지고 그러니 더 가라앉고의 반복. 상식적으로 힘을 주는 것이 더 어려워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내 몸은 힘을 빼는 것이 더 어려울까? 모든 운동이나 움직임엔 힘을 줬다가 빼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호흡도 그렇고.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어야 호흡이 되는데. 내 의식은 들숨에만 가 있었다. 의식적으로 하는 것은 힘을 주는 일. 빼는 것은 의식하지 못했다.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의식해 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힘 빼기를 의식했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피아노를 치거나 거문고를 탈 때도 정확한 곳에 힘을 주려면 어깨에는 힘을 빼야 했다. 어릴 때는 정말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 어떻게 어깨에는 힘을 빼고 팔에는 힘을 주지? 여러분도 한번 해보시라. 


     

가장 최근 연주 리허설 중 <선생님 추모공연>


내가 터득한 힘 빼기는 농현이라는 연주법을 통해서였다. 거문고 줄을 누른 상태에서 밀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면 일정 간격으로 음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소리에 깊이를 더하는 연주법이다. 줄을 밀 때는 힘을 주고 놓을 때는 힘을 빼는 것인데, 힘을 뺄 때 힘이 들어가면 농현이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농현을 익힌다는 것은 초급자에서 중급자 단계로 올라가는 관문으로, 전공자 입장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왜 우리 선생님처럼 깊고 자연스러운 울림이 없는가. 몇 날 며칠을 씨름했던 기억.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원하던 자연스럽고도 깊은 농현이 저절로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머리가 아닌 내 몸이 해낸 일이었다. 감각으로 해낸 일. 의식이 아니라 직감으로 해낸 일이었다. 힘 빼기의 기술은 어쩌면 의식해서 해내는 것이 아니라 직관을 따르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러운 글쓰기, 야외에서의 글쓰기도 해볼 만하다!



우리가 숨을 쉴 때 의식하지 않듯, 농현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올 때 그 기능을 다 했다. 브런치 닉네임을 ‘김태힘’이라고 한 것은 무의식 중에 글을 쓸 때도 힘 조절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글은 힘 조절이 잘 된 글이다. 대체로 힘 빼고 써서 읽을 때도 힘이 덜 든다. 잘 읽히면서도 재미있고 감동도 주는 글. 재미와 감동의 포인트에 적절한 힘이 들어가 리듬감 있는 글이 좋다. 글을 쓸 때도 거문고 탈 때처럼 힘 조절은 필수인 셈. 처음 농현법을 익혔을 때의 그 감각을 떠올린다.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손과 팔이 알아서 움직이며 만들어낸 그 순간을. 그러니 셀 수 없이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에 힘이 빠지고 어느새 좋은 글을 쓰게 되겠지? 또 내겐 남다른 힘이 있으니 조절하는 능력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오늘은 의식적으로 힘을 빼고 써본다. 




구름은 늘 완벽하다. 어떤 곳 어떤 날씨에서도!


창밖의 구름은 유유히 흘러간다. 이보다 자연스러울 수 없다. 완벽한 자연스러움. 구름이 흘러갈 만큼의 적절한 힘을 쓸 줄 아는 바람. 바람에게 힘 조절 좀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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