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힘 Oct 04. 2022

뜬구름

어쩌면 그 구름이 나를 살리고 있는지도 몰라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 있다. 

어릴 적 장래희망이 뭐니? 물으면 대외적인 대답이 있었다. 

선생님, 조금 더 커서는 카피라이터, 

연주자. 

그리고 누구에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사람,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 

일이라기보다 그런 순간이 행복했다. 

나의 행동으로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기쁨을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다. 그게 재미있었다. 나의 쓸모 있음을 스스로 알 때의 기쁨을 아기 때부터 알고 있었을까? 내 오랜 별명은 '방글이'였으니까. 

방글방글 잘 웃어서 엄마 아빠가 어릴 적부터 태임이라는 이름보다 더 많이 불러 준 또 다른 나의 이름. 

엄마 아빠도 태임 엄마, 태임 아빠가 아니라 방글 엄마, 방글 아빠였고. 친척들도 나를 방글이로 알고 있는 어른들도 많았으니까. 


내가 어떻게 했을 때 앞에 있는 사람이 좋아하고 웃는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 좋은 점은 

타인의 호불호를 금방 알아차리고 즉각 반응이 가능했다. 어딜 가나 중간 혹은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할 행동은 굳이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게 하기 위한 행동이 의식하지 않고도 바로 나올 정도로. 한 때 친구들은 그런 나의 정체를 두고 박쥐라고도 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해서 한 번도 혼자인 적은 없는 친구. 그렇지만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은 친구. 다른 사람의 행복만을 위해 웃기기 위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그런 방글이 모습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 것은 중학교 1학년 무렵.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사춘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걸까? 내가 행복하기 위한 첫 번째 문이 열렸던 때. 혼자 있고만 싶은 마음이었다. 가족 모임도 혼자만 빠지고 내 방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던 그때.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 시작한 때였다. 라디오와 일본 잡지, 그때부터 시작된 문구, 사부작사부작 무언가 쓸데없는 것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밤을 새워했던 일은 하드보드지로 필통 만들기라던가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하는 일. 내 취향을 찾아가고 내 색깔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던 기특한 나. 음악을 들으면서도 상상 속의 나는 가만있지 않았다. 기타를 치거나 드럼을 두드리고, 혹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상 속의 내가 추는 춤은 당장 댄서가 될 것만 같았고, 음악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만의 세계에서 나만이 가진 비밀스러운 시간. 고집스럽게 집착한 옷이 있었고, 몇 날 며칠 같은 옷만 입어서 엄마가 빨래 못하게 입고 자기도 했던 기억.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같은 옷을 이틀 연속 입는 일은 그 이후 일어나지 않았다. 잠옷 제외.


사람들 속에 함께 있을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는 분명 달랐다. 다른 사람 이목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서였을까? 인기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과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의 충돌을 느낀 건 서른을 넘겨서였다. 다이어리엔 매일 새로운 미팅으로 가득 찼고, 약속이 취소되면 어떻게든 그 시간을 다른 만남으로 채우려 기를 썼다. 모임 추진, 일 벌이기도 좋아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불과 20년 전인데 전혀 다른 사람 이야기 같다. 지금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은둔형에 가까우니까. 1:1 만남 외엔 대체로 피곤하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가십거리, 남 얘기하는 것에 쉽게 지쳐 어느새 내가 맺고 있던 관계의 95%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리되었다. 가치관이 달라지면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속은 여러 번 바뀌어 갔다.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기까지 스스로 선택한 것도 있었고, 자연스레 멀어진 것도 있었다. 텔레비전을 안 본지는 벌써 오래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난 남다른 것이 좋다는 주의였다. 그건 어릴 때도 그랬다.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좋았다. 교복이 그래서 싫었고 어떻게든 나는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단추 하나라도 바꿔 달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유일한 존재이고 싶었을까? 내가 가진 물건으로 그 사실을 증명해 내고 싶었을까? 어릴 땐 말이다.


누군가 쓸데없는 일이라 비웃는 일을 밤을 새워가며 했던 나로서는, 그 행동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다. 지긋지긋한 현실에서의 일탈. 무엇은 손으로 오리고 붙이고 만들면서 현실에서 마주했던 문제들에서 한숨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쓸모 있고 건설적인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마당에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는 이유는, 그 뜬구름의 쓸모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비웃지 말라. 그 사람의 숨통일 수 있다. 누구 해치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숨을 붙들고 있는 유일한 끈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렇다. 가구를 이리 놨다 저리 놨다, 피아노를 혼자 끌고 밀고 해가며 위치를 바꾸는 나란 사람은 그리 해야 숨을 쉬고 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좀 피곤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작은 내 방에서의 구조 변경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얼마 전 그림책 수업시간 우리들의 뜬구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말도 안 되는 위시가 하나쯤은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왜인지 신이 났다. 그리고 왠지 그 일을 이어나간다면 정말 뭔가 멋진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으로 마구마구 응원의 박수를 쳤더랬다. 그래요! 맞아요! 정말 멋진 일이에요. 계속 그 쓸데없고도 즐거운 일을 놓지 말아요. 우리, 우리의 뜬구름을 좋지 말아요. 엉뚱하고 기발한 자신만의 뜬구름을 잡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안아달라는 거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