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May 23. 2024

동물 구조(3)-고라니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7)

(사진 출처-경향신문 '서울 잠실 아파트촌에 고라니 출몰 잇따라(2015. 02. 01자))


2011년쯤이었나 보다. 그때 나는 부산의 외곽인 강서구에 있는 강서소방서에 몸담고 있었다. 그때가 내가 가장 동물구조를 많이 한 때이기도 하다. 강서구는 도심의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농촌과 어촌 느낌이 나는 곳이 많았고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데다 드넓은 농경지와 공장지대가 공존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는 갈매기, 오소리, 고라니, 매, 벌 등의 많은 동물 구조를 했었다. 그중에서 오늘 고른 놈은 바로 이 '고라니'라는 녀석이다. 


이 고라니라는 놈은 (나도 이런 사실을 최근에 알았지만)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이다. 그런데 그런 멸종 위기종이 한국에만 90% 이상이 몰려 살고 있다고 한다. 왜 한국이 그리 좋을까? 그래서 이놈들은  세계적으로는 보호를 받는 귀한 몸이지만 한국에서는 심심찮게 출몰해 농부들과 소방관들을 피곤하게 하는 놈이기도 하다. 이 고라니가 유독 한국에 많은 이유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호랑이나 표범등 천적을 싹쓰리(?)해서 이놈들이 두 다리(?) 뻗고 살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세계 각국(래봐야 중국과 러시아?)의 고라니들이 모두 한반도로 모여들어서 그렇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강서소방서에 있을 때 동물들도 많이 구조했지만 결정적으로 거기엔 동물구조의 달인(?)이 한분 계셨다. 그분은 우리 팀 팀장이셨던 김팀장님이었다. 그분 밑에 있으면서 나도 동물 구조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그분은 벌집은 물론이고 오소리, 갈매기, 매와 갈매기까지 모든 동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했는데 오늘은 그분과 함께 고라니 구조를 한 썰을 풀겠다. 


시기는 날씨가 조금 무더워지려는 요즈음이었던 것 같다. '고라니' 하면 산에 사는 사슴이나 노루와 친척쯤으로 그들과 같이 산에 살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생각과 다르게 그 녀석이 나타난 곳은 바다와 낙동강이 만나는 강 하구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풀밭이나 강가가 아닌 '횟집' 안이었다. 


 https://youtube.com/shorts/BqMKz2PbQRI?si=BLypT1HI2xbCvqPl

(고라니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소방차로 출동하면서 팀장님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그랬다. 이 녀석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산속이나 숲 속에 사는 것이 아니고 바다나 강변과 같은 물가에 살면서 물가에 자라난 식물의 어린잎들을 먹고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녀석은 횟집에서 나타났는지 물어보니 그분은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 거기 상추나 깻잎 냄새를 맡고 들어간 거겠지~"


정말 우문현답이 아닐 수가 없었다. 횟집에는 횟거리와 함께 그것을 싸 먹을 깻잎과 상추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횟집 사장의 신고를 받고 찾아간 우리는 횟집 손님방에서 그놈을 만나게 되었다. 위 사진처럼 좀 어린놈으로, 등에는 하얀 점무늬가 있는 귀여운(?) 놈이었다. 그 사장님 말에 따르면 오늘 저녁에 단체 손님이 있어서 미리 손님방에 테이블을 세팅하려는데 어느 순간 보니 고라니란 놈이 방을 헤집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이반장, 내가 방에 들어가 저놈을 몰아 올 테니 이반장이 이 방문을 이렇게 조금만 열고 여기다 그물을 대고 기다려, 그러다가 그놈이 뛰쳐나오면 이 그물에 가둬버려!"


김팀장님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10평 남짓 되는 방이었는데 그놈이 어찌나 헤집고 다녔던지 상위에 놓인 음식들과 바닥의 방석들이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깻잎과 상추를 보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헤집고 다녔나 보다. 난 두 손으로 그물을 꽉 잡고 순간 긴장했다. 그놈이 이 그물을 훌쩍 뛰어넘어서 도망가면 어쩌나, 아니면 그물 아래로 '쏙' 빠져 달아나면 어쩌나 하며 그물을 좀 더 위로 갖다 대야 할지, 아래로 갖다 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이나 흘렀을까, 팀장님이 다시 내게 소리치셨다. 


"이반장, 이리 와서 이것 좀 도와줘~"


내가 그물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구석에 팀장님이 고라니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팀장님은 자신이 입고 있던 검은색 소방점퍼로 고라니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있는 쪽으로 몰 것도 없이 자신이 직접 처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놈은 팀장님의 가슴을 향해 뒷발질을 계속 해대고 있었다. 팀장님이 자신의 점퍼로 그놈의 몸뚱이를 잡고 있었지만 그놈은 언제라도 팀장님을 뒷발질로 차고 그 품을 뛰쳐나갈 것 같았다. 


"이반장, 내가 이놈 다리를 붙잡고 있을 테니, 저기 수건으로 눈을 가려!"


그의 말에 따라 내가 수건으로 그놈의 눈을 가리자, 쉬지 않고 뒷발질을 하던 다리도 힘이 풀리며 뒷발질을 멈추었다. 


"휴우, 이놈들은 눈을 가리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뒷발질을 한단 말이야, 잘못하면 사람이 맞아 다칠 수도 있어~"


우리는 그렇게 녀석의 눈을 수건으로 가리고 그 수건을 그놈의 머리뒤로 꽉 매었다. 그리고는 녀석을 그물에 넣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십몇 년 전이라 동물을 구조하면 구청이라든지 동물보호협회에 연락해서 그 동물을 이관시키기보다는 그대로 자연에 놓아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소방차를 어느 정도 몰고 가다가 녀석을 물가가 있는 한적한 수풀에 풀어주었다. 눈에 감은 수건이 풀린 녀석은 그렇게 자신을 살려준 우리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긴커녕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났다. 


"저 녀석 어린것 같은데 여기서 잘 살까요?"


"그래, 아직 새끼인 것 같은데 어딘가 어미가 있을 거야, 어미를 만나게 된다면 여긴 아무 천적이 없고 재빨라서 사는 덴 지장이 없을 거야, 괜히 사람들이 먹는 횟집에나 멋모르고 들어가지 않는다면 말이야."


우리는 그놈이 사라지는 방향을 향해 같이 웃었다. 그놈이 이 수풀에서 잘 살아서 어른이 되어 새끼를 많이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놈에게는 최고의 행복일 테니까... 오월의 햇살이 아스라이 소방차와 수풀 속의 나무들을 비쳐주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동물 구조(2)-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