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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Oct 15. 2021

‘또라이 모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회색 벽에 쇠창살이 있을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일반 병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창문이 열리지 않고,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을 뿐이었다. 여성 병동에는 나 포함 4명의 환자가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우리는 꽤나 친해졌다. 알콜중독으로 손을 떠는 언니,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언니, 망상이 심한 동생, 그리고 자살시도로 들어온 나는 그렇게 한 방을 쓰게 됐다. 우린 ‘또라이 모임’이 되었다.


정신병동에는 핸드폰도 노트북도 가져갈 수 없다. 아침 7시, 12시 저녁 6시에 꼬박꼬박 밥이 나온다. 그 외 시간은 그냥 때워야 한다. 할 게 너무나 없다. 멍을 때리다가 잠을 자다가 책을 보아도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심심한 우리는 루미큐브를 했다. 화투를 치기도 했다. 알콜중독으로 손을 떠는 언니가 루미큐브를 하다 조각을 전부 어지러트리면 모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조각을 맞춰주었다. 환각을 보는 언니는 게임하는 내내 쥐가 돌아다닌다며 꺅꺅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재밌게 게임을 했다.


“언니 블루투스 이어폰 쓰면 안 돼요.” 망상이 심한 동생이 이야기했다. 왜냐고 물으니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해킹을 해서 사람을 조작한다는 말이었다. “엄마 아빤 사실 제 진짜 엄마 아빠가 아니에요. 여기 들어온 이유는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서예요.” 동생은 유전자 검사를 해줄 때까지 모든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동생은 계속되는 파국 망상에 힘들어했다. 나는 동생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알콜중독으로 심하게 손을 떠는 언니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손 떠는 게 보기 싫다고 했다. 하루에 겨우 한 끼 먹는데 그마저도 한 두 숟가락이 전부였다. 나는 끼니마다 언니에게 밥을 먹자고 제안했지만 언니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낫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자살사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자살할 길이 없다. 모든 것이 안전하게 세팅되어있기 때문이다. 얼른 나가 자살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낫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매듭을 풀듯 쉽게 되지 않았다. 자살시도로 들어온 내가 꽤나 병세가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또라이 모임’에선 다른 결론이 나왔다. “너는 어디서 들어왔어? 응급실에서 왔어?” 환청에 시달리는 언니가 내게 질문했다. “저는 자의 입원했어요.” “뭐? 여기를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고? 얘 진짜 미친년이네 어머.” 그렇게 나는 4명의 환자 중에 제일 ‘미친년’이 되었다.


“아 진짜 정신병자 같아”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보통 비하의 의미로 사용되고 혐오적 발언이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정신병자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환자라는 것이다. 누구나 아플 수 있듯이 그냥 아픈 것이다.


나에게도 편견이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화가 되지 않을 거라고, 미디어에서 정신질환자를 그리는 모습처럼 다 벌벌 떨며 이상한 말을 반복할 것이라는 편견에 나도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잘못되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만난 정신질환자들은 낫기 위해 애쓰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열심힌 사람들이었다. 심심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자신의 병에 대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린 깔깔 거리며 웃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하고 서로의 등을 쓰다듬기도 했다. 심심할 땐 화투를 쳤고 그래도 심심하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의 맘을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모두가 힘들어하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애썼다. 이 얼마나 특별한 연대인가.


퇴원은 내가 제일 빠르게 했다. 퇴원할 때 잠겨있는 문 밖으로 잘 가라고 다신 만나지 말자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이상한 만남이다. 다시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모임.


나는 가끔 이 친구들이 그립다. 어떤 우연으로도 다시 만나기 어렵겠지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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