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쓰고 학교 다녔습니다.
“너는 뭔데 모자를 쓰고 학교에 와?” 교문 앞에서 등교 지도하던 학생부 선생님이 나무 회초리로 내 머리를 치며 이야기했다. “항암치료해서요” 작은 목소리로 내 사정을 설명하고서야 교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선생님은 미안하단 말 조차 없었다.
나는 17살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니 2학년이 되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진급은 되는구나 싶었다. 항암치료하며 살이 15kg 넘게 빠져, 교복을 입으니 마치 허수아비가 옷을 입은 거 같았다. 머리카락도 전부 빠져 민머리였는데 엄마는 가발을 사주지 않았다.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허수아비 같은 교복과 털모자를 쓰고 학교에 다녔다.
“주영아 주영아 이거 써봐” 어느 날 친구들은 내게 가발을 내밀었다. “민혁이가 여장했을 때 썼던 가발 너 준대” 작년 체육대회에서 여장 대회했을 때 사용한 거라고 했다. 항암치료를 하기 전 나는 유난히 머리숱이 많고, 길었다. 이제 그 머리카락이 없구나 새삼 깨달았다.
가발이 내키지 않았던 나는 어색하게 가발을 썼다. 친구들은 이상하다며 가발을 매만져주었다. 그러다 실수로 가발을 뒤로 당겨 마치 변발한 사람처럼 가발이 정수리쯤에 걸쳐졌다. 아차 할 틈도 없이 친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씁쓸하게 나도 따라 웃었다.
새까만 단발 기장의 가발은 싸구려였다. 칫솔모 같은 가발이 목과 귀를 찔러 염증이 났다. 쉽게 빠지고 엉켜 군데군데 뭉쳐있었다. 그 가발은 누가 봐도 이상해 보였다. 나는 그 싫은 가발을 쓰고 학교에 다녔다. 교문 담담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매번 “너는 왜 가발을 쓰고 학교에 오냐”고 물었고 나는 사정을 이야기해야만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나에 대해 모르는 학생들은 뒤에서 수군수군 대기도 했다. “쟤 머리 가발 같지 않아?” “네가 한 번 벗겨봐” 학생들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여름이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가발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가발에 쓸려 귀에 염증도 생겼다. 그래도 어느새 가발에 적응한 거 같았다. 그날 급식에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샐러드가 나와 신이 났다. 친구가 고구마 샐러드를 남겨 내가 야금야금 뺏어 먹었다. 그때 갑자기 뒤가 시끄러워지더니 누군가 내 가발을 홱 낚아채갔다.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모든 이목이 나에게 쏠렸다. 누구는 웃고 있었고 누구는 무표정이 었지만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가발을 벗겨간 무리들은 자기네들끼리 가발을 주고받으며 신나 했다. 나는 가발을 달라는 말도 못 하고 울면서 급식실을 나왔다.
다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삶을 살게끔 되어있는 고등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보이면 학생들은 귀신같이 그 점을 파고들었다.
눈총, 눈초리.
나는 매일 총을 맞았다. 나는 매일 눈초리가 회초리보다 더 아프다는 걸 느껴야 했다. 가발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까지 아플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