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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Oct 13. 2021

17살. 난소암 판정을 받았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난소에 생긴 혹을 떼는 간단한 수술이라던 의사의 말은 거짓말이 되었다. 수술은 10시간을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오른쪽 난소를 떼고 나머지 난소도 반을 떼어 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암 덩어리가 남아 있어 10회 차의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항암치료를 3회 정도 진행했을 때 머리카락이 다 빠져 민머리가 되었다. 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져 씹을 수가 없어졌다. 냉장고 문조차 열 수 없을 정도로 몸에 힘이 없었다. 머리카락처럼 온몸의 활기가 빠져버렸다.     


구토가 심해져 구토를 멈추는 약을 처방받았다. 구토를 멈추는 약의 부작용으로 복통이 생겼다. 그러자 의사는 진통제를 처방했다.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만 한 주먹이었다. 그때 나는 계속되는 구토로 식도가 다 헐어 물조차 넘기기 힘들었다. 매일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먹어야 하는, 치료 아닌 고문이 시작되었다. 죽어가는 건지 나아지는 건지 모를 나날이었다.     


55킬로그램이던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빠졌다. 항암치료 중지. 40킬로그램이 되지 않으면 치료를 진행할 수 없다. 아니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치료도 할 수 없다니. 아침마다 병실 체중계 앞엔 줄이 길게 생겼다.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 위암 그리고 난소암. 나와 같은 이유로 치료가 중지된 40킬로그램 클럽. 다들 500그램이라도 늘었길 기대하며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누군가 40킬로그램을 넘겨 치료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체중계 앞에서 다 같이 기뻐했다.     


보통 항암제 투여를 중지하고 2주 정도 지나면 체중이 올랐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다 되도록 체중이 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수면제, 진통제에 취해 잠을 잤다. 그러다 잠깐 눈을 뜨면 구토를 했다. 아무것도, 심지어 물조차 넘기지 못한 채로 한 달 가까이 보냈다. 기저귀를 차고 대소변을 보다가 나중에는 소변줄을 삽입했다. 스스로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사는 걸까, 살고 있는 걸까.      


35킬로그램까지 빠졌을 때 의료진은 콧줄을 삽입하여 영양을 공급하지 않으면 더 이상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더니 콧줄을 들고 병실에 쳐들어 왔다.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나를 앉히고 코에 무작정 호스를 넣었다. “삼키세요. 삼켜요.” 물조차 삼키지 못하는데 코를 통과해 식도로 들어가는 호스를 삼키라니. 끝내 의료진은 다 헐어버린 식도에 호스를 연결하는 작업에 성공했다.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일이 또 하나 사라졌다.     


무려 14 전의 일이다. 완치 판정을 받은 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보통 암은 5 동안 재발이 없으면 완치 판정을 한다.) 얼마 , 난소와 자궁에 또다시 혹이 생겼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14  수술과 항암치료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다신 반복할  없을  같은 과정들. 떠올려 보면 어떻게 참았나 싶은 그때가 아직 생생하다.     


뱃속의 혹이 걱정되어 잠 못 이루다가 또 아무렇지 않다가, 다시 무섭다. 결국은 암으로 죽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꼭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다. 항암치료 중 생긴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나아져서 이제 좀 살아볼까 하는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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