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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Jan 03. 2022

아빠의 흰색 트럭

아빠는 흰색 1톤 트럭을 타고 다녔다. 목수였던 아빠는 그 트럭으로 가구와 자재를 날랐다. 흰색 포터는 짐뿐 아니라 언니와 나도 날랐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빠는 아침마다 언니와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아빠는 엄마와 결혼 직후 트럭을 샀다고 했다. 그 트럭은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트럭을 타고 가족여행도 가고, 아플 때 병원도 갔다. 아빠와 함께 고된 목수 생활을 한 트럭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기저기 낡고 녹슬었다.


“저기 문방구 앞에서 내려줘. 살 거 있어.” 나는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문방구 앞에서 내렸다. 진짜로 필요한 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낡은 1톤짜리 포터 트럭에서 내리는 것이 창피했고, 학우들이 별로 없는 곳에서 내리고 싶었다. 나 말고도 엄마나 아빠의 차를 타고 학교에 오는 학우들은 많았다. 다 승용차이었다. 다들 멋진 차에서 내리는 거 같은데 나는 왜 낡은 차, 그것도 트럭에서 내려야 할까. 어쩌다 아빠가 새벽 일찍 나가는 날엔 나는 무척 신났다. 아빠의 트럭에서 내릴 필요 없이 버스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난 아빠의 트럭이 싫었다. 아빠의 트럭에서 내리려면 폴짝 점프를 해야 했다. 의자의 높이가 승용차보다 높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내리는 것도 싫었다. 아무튼 나는 그 트럭을 매우 미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타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가구 공장과 전시점을 운영하던 아빠는 IMF의 여파로 빚더미에 앉았다. 공장과 전시점을 정리한 아빠는 집에 숨어 버렸다. 아침에 우리를 트럭으로 데려다주는 일 외에는 집 안에만 있었다. 처음에는 집에서 나가지 않던 아빠는 어느 날부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빠의 트럭도 멈춰 섰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그때도 아빠의 트럭은 여전히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아빠는 밥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방 밖 세상이 아빠에겐 지옥처럼 느껴졌는지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다. 엄마는 아빠가 숨은 방 앞에 밥을 차려 놓고 요강을 놔두었다. 밥이 비워지고 요강이 채워지는 걸 보며 ‘아빠가 아직 살아 있구나’를 확인했다.


밖으로 나오지 않던 아빠는 15년이 지나 조금씩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2013년, 내가 대학을 그만둔 뒤부터다. 이젠 나를 어딘가에 데려다 줄 일은 없지만, 트럭은 우직하게도 주차장을 지켰다. 아빠는 가구 공장에 취직했다. ‘사장님’에서 ‘일꾼 1’이 된 아빠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트럭을 모는 것보다 더 싸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곧, 그 트럭은 폐차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트럭. 아빠에겐 어떤 차였을까. 난생처음으로 산 트럭과 함께 공장을 가꾸고, 전시점을 만들어 가구를 배송했던 아빠였다. 그 트럭도 열심히 달리다 IMF 이후 쓸모없이 서 있게 되었다. 어쩜 우리 아빠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차가 폐차되었을 때 아빠도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일생과 닮아 있는 트럭의 운명 앞에 아빠는 두려웠을까.


3년 전, 빚을 내 아빠 차를 장만해드렸다. 남색 소형 SUV였다. 차를 받은 날 온 가족이 시승을 나간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아빠와 우리 모두 웃고 있었다. 아빠는 그 차로 출퇴근을 했다. 새로운 차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아빠가 닮아 보여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새 차를 산지 1년도 채 안 돼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아빠는 그렇게 일자리에서 쫓겨나며 운전대에서도 내려왔다. 엄마도, 언니도, 나도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에 차도 다시 멈추었다.


차를 사던 날을 떠올린다. 새 차가 주는 신남이 아직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아빠도 처음 포터 트럭을 뽑았을 때 그랬을까. IMF 이후 멈춰 있던 흰색 포터 트럭과, 병세가 심해지고 멈춰버린 남색 티볼리. 아빠의 운명과 같이 하는 차들.


최근 건강을 회복한 아빠는 가끔 차로 엄마를 일터까지 데려다준다. 쓸데가 많지 않은 차를 팔자고 몇 번이나 말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아빠는 차를 여전히 몰고 싶어 했다. 나는 아빠가 차와 함께 늙고 싶은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차를 몰아 가구를 배송할 곳도, 출근할 곳도 없다. 차는 집 앞에 세워져 있는 날이 많고, 아빠 또한 집에 있는 날이 많다. 예전처럼 집 밖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갈 곳이 없을 뿐이다.


“차로 용달 일이라도 할까 봐.” 아빠는 말했다. 작은 짐을 옮기는 일로 용돈벌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달리고 싶은 거 같았다. “추석에 고석정이라도 다녀올까?” 아빠는 내게 넌지시 물었다.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소풍이라도 가자고 했다. 아빠의 물음에 설렘이 담겨져 있었다. 아빠의 차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남색 티볼리가 빠르지 않더라도 오래 달리면 좋겠다. 쓸모가 없더라도 여전히 집 앞에 세워져 있으면 좋겠다. 아빠와 함께 느리고 우직하게 그대로 늙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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