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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눈별 Jul 05. 2023

촐랑이의 인사

혈액응고를 돕는 혈소판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촐랑이는 결국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로 죽었다. 촐랑이의 시체를 안고 장례식장에 갔다. 이미 촐랑이의 병원비로 1000만 원 가까이 지출한 우리는 돈의 씨가 말라 있었다. 회장 비용, 관 구입비, 염비, 수의까지... 장례식장에서도 돈은 많이 필요했다. “마지막 가는 길인데 제일 좋은 관으로 해주세요. 그래야 후회 없으실 거예요.” 장례식장 직원의 말이 야속했다. 하지만 돈이 정말 없었다. 제일 저렴한 관과 수의를 선택했다. 다른 옵션도 다 뺐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들더라도 염은 꼭 하고 싶었다. 사후세계에 대한 어떤 미신도 믿지 않지만 염을 안 하면 너무 후회할 거 같았다. 과다출혈로 죽은 촐랑이의 입과 코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기 전까지 피를 토하다 죽었을 촐랑이를 닦아주지 않고 보낸다면 장례식장 직원의 말처럼 평생 후회할 거 같았다. 그렇게 촐랑이를 보냈다.     


촐랑이가 많이 그리워 나는 촐랑이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서 촐랑이는 여전히 입과 코에 피를 흘리며 서 있었다. 그맘때 나는 촐랑이의 ‘ㅊ’만 생각해도 눈물이 났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문을 열 수 없었다. 반겨주는 촐랑이가 없는 현관이 너무 두려웠다.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가족이 있으면 문 앞에서 기다리던 촐랑이가,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 우리가 일어나면 아주 오랜만에 본 거처럼 신나게 반겨주던 촐랑이가 나는 너무 그리웠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환대. 5kg 남짓한 촐랑이의 부재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웠다.     


이제는 촐랑이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요즘 꿈속 촐랑이는 건강한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촐랑이’를 발음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촐랑이와 함께 누워 잠을 자다 눈을 뜨면 촐랑이는 반갑다고 인사했다. 내내 같이 있었는데도 반가워서 꼬리를 흔들고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촐랑이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별 일 없이 살다 평균수명 즈음에 죽는다면 약 50년 후쯤엔 만날 수 있을 거 같다. 55년 만의 재회를 기다린다.


예전에는 촐랑이를 다시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너를 병원에 버린 게 아니라고. 네가 눈감기 전에 병원에 도착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더 예뻐해 주지 못해서, 때때로 너를 귀찮아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해야 할 말만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저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들 너를 안고 반갑다고 온몸으로 인사하고 싶다.      


촐랑이는 꼬리를 흔들며 우다다 뛰어와 내게 안기고 다시 뛰어갔다 내게 안길 것이다. 빙글빙글 돈 후 앞발을 내리고 엉덩이를 치켜들겠지. 내 얼굴을 핥고 발 냄새를 맡을 것이다. 껑충 뛰어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박을지도 모른다. 앞발로 나를 긁고 킁킁거리며 온몸의 냄새를 맡겠지. 헥헥 거리며 혓바닥이 입 밖으로 나올 것이다. 여전히 꼬리는 쉴 새 없이 흔들고 있겠지. 너는 언제나 그랬듯이 온몸으로 나를 반겨 줄 것이다. 나도 온몸으로 너와 인사하겠지.  그리웠던 세월만큼 너를 안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강렬한 언어로 우린 인사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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