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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erson Jul 28. 2019

피터 파커는 진짜 성장했을까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을 보고

*스포있음


“사람들은 무얼 보여줘도 믿을 거야”


드론과 AR(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테러가 사람들에게 들통나면 어떡할 거냐 걱정하는 악당 동료에게 미스테리오는 이 같이 말한다. 이는 진실보다도 보이는 것 혹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믿으려는 대중의 맹목적 믿음을 비판하고자 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어벤져스의 은퇴로 세상은 혼란스럽다. 사람들에게는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들로부터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히어로가 필요하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톰 홀랜드)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아버지처럼 의지해왔던 멘토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믿고 의지할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상은 피터가 제2의 아이언맨이 돼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책임이 부담스럽고 싫다. 아직 십 대 소년인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고민은 곧 있을 수학여행에서 짝사랑하는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고백할지다. 히어로도 좋지만 고등학생 신분인 만큼 남들처럼 수학여행을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연애도 하고 싶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악당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다. 그는 피터를 속여 토니가 피터에게 남긴 최첨단 과학기술인 ‘이디스’라는 안경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 자신의 드론과 AR기술을 접목시켜 세상을 속여 테러를 일으키고 스스로 영웅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

영화는 미스테리오를 활용해 매스미디어의 거짓과 환영, 그리고 여론 선동에 쉽게 휘둘리는 대중을 비판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단연 첫 번째 쿠키 영상일 것이다. (메인 스토리보다 쿠키 영상이 더 의미 있다는 점은 좀 아쉽다. 무엇보다 어두운 심연의 끝까지 갈 수 있는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를 이 정도로 밖에 쓰지 못한 것은 마블의 실수다.) 미스테리오는 스파이더맨이 지구를 구한 자신을 죽였다는 내용과 함께 그의 정체가 피터 파커라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세상에 폭로한다. 조작된 영웅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그의 거짓된 주장은 단숨에 진실로써 기능한다. 미스테리오가 악당이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결국 피터는 조작된 현실이 아닌, ‘피터팅글’이라 불리는 자신의 직감을 믿을 때 미스테리오와의 결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같은 승리가 과연 피터로 하여금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영화가 끝나면 ‘큰 힘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해보게 된다. 스파이더맨에는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좋은 대사가 있을까 싶다. 대사는 이번 영화가 아닌 과거 샘 레이미 감독,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2002년)에서 등장했지만, 모든 스파이더맨 영화의 주된 스토리가 철없는 십 대 소년 피터가 진정한 히어로로써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스파이더맨은 총 2번 리부트 됐었다. 1대 스파이더맨 배우 토비 맥과이어, 2대 앤드류 가필드, 3대 톰 홀랜드.).


다만 이 작품에서 만큼은 예외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는 자신이 막을 수 있었음에도 묵인한 범죄로 삼촌이 죽음으로써 힘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앤드류 가필드의 피터 역시 자신의 경솔함과  오만함으로 인해 여자 친구를 잃게 됨으로써 한 단계 성숙하게 된다. 이들의 선택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들 스스로 정한 결과에 따른 성장이었다. 하지만 톰 홀랜드의 피터는 단 한 번도 스스로 뭔가를 선택한 적이 없다. 심지어 좋아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할 때 조차도 미스테리오의 음모를 막기 위해서였다.

미스테리오로 인한 강제 커밍아웃은 어떠한가. 언뜻 보면 이는 ‘아이언맨 1’에서 토니 스타크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장면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토니는 스스로 자신을 공개했고, 피터는 타의로부터 강제 공개됐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피터는 세상을 적으로 돌린채 공개됐지 않은가.


이는 단순히 악당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피터의 숙모는 수학여행에서 편히 놀다 오고 싶어 하는 그의 가방에 스파이더맨 슈트를 챙겨 넣고, 가장 친한 친구는 피터보다 더욱 지구를 구하는 미션 수행에 관심을 가진다. 또 닉 퓨리는 유럽에까지 그를 따라와 여행 일정을 망치며 지구 평화에 힘을 보탤 것을 반강제하고, 해피는 “토니도 너처럼 수없이 실패하고 고민했다”며 피터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합리화시킨다. 극 중 그 누구도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다는 피터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큰 힘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만드는 행동 동기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부터 이뤄졌다면, 그는 과연 진정한 의미로써의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고 믿을 수 있을진 모르겠다. 다만 그 무엇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게 될 진 의문이다. 스파이더맨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면서 동시에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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