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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erson Aug 27. 2019

힘드니까 청년이다?

‘엑시트’를 보고

*스포있음


극중 독가스가 짙게 깔린 미래신도시는 현실 속 청년세대를 상징하는 공간 설정일 테다. 극중 말마따나 재난과도 같은 취업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두 주인공 용남(조정석)과 의주(윤아)는 두 손 가득 물집 잡혀가며 고군분투한다. 흥미로운 소재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의 연속, 주인공들의 운빨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현실 속 청년세대의 어려움을 재난상황에 빗대어 보여주고자 했다면 적어도 영화 나름의 결말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들의 미래가 희망적이든 절망적이든 말이다.

영화는 현실 속 청년세대의 문제에 대해 참여하려는 척하지만 실은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용남과 의주는 재난과도 같은 현실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이 다시 마주하는 건 이전과 다를바 없는 지독한 취업난의 현실이다. 한시간 사십분 가량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용남과 의주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남과 의주의 러브라인 형성을 암시하는 엔딩은 괘씸하다. 마치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니들에겐 사랑이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엔딩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차라리 용남의 희생과 용기와 끈기를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대기업 임원이 사건 이후 용남을 취직시켜 주는 게 더 좋은 엔딩이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주라는 캐릭터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건 이후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출구’ 쪽에 가까운 데 서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결국 청년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영화 포스터에서처럼 그냥 계속해 뛰거나 오르는 것일 뿐이다. 극 중 용남의 대사처럼 "내 말 좀 들어!"라는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허공에서 흩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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