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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Jun 14. 2018

네가 아프면 아빠도 아프단다

(14) 첫째와 둘째 사이_아빠

아이의 힘겨움, 부모의 힘겨움



 '삐빅' - 귀에 갖다 댄 체온계의 LED 액정은 야속하게도 ‘위험’을 알리는 빨간색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39.2도. 어두컴컴한 안방에서 곤히 잠든 첫째 아이의 얼굴 위에도 빨간 불빛이 스며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구나, 미리 알아채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네 식구가 함께 살게 된 지 한 달 무렵이었다. 







 최근 두 달의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물론 가장 큰 이벤트는 기다리던 둘째의 탄생이었다. 둘째를 낳으러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던 대기실에서의 긴장, 태지를 잔뜩 묻힌 헝클어진 머리의 둘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당황스러움, 아직 목도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를 데리고 처음 집에 왔을 때의 감동,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아이 젖을 먹이던 아내를 보며 느끼던 왠지 모를 미안함 같은 감정들도 빠르게 흘러갔다. 


 둘째가 온 우주(?)의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자라나는 사이, 관심에 조금은 멀어진 첫째는 다행히도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는 모양새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가 안정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으로 사진이니 동영상을 찍어 아내의 메신저로 보내왔다. 영상 안의 첫째는 한 다리를 살짝 들고 개구지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방심했던 탓일까.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에도 얼마간 병원에 다녀야 했던 아이는, 둘째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잠깐 열이 잡히면 콧물이 흐르고, 콧물이 멎어 안심할 때 즈음 다시 고열이 나는 식이었다. 


 온 방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호기심에 손을 갖다 대던 아이가, 고열과 부어오른 목에 힘겨웠는지 힘없이 앉아 책만 보는 모습이 보였다. 인공적인 단맛에 씁쓰레함을 억지로 감춘 약을 먹이려다 보니, 아이는 사레가 들려 기침 끝에 먹은 것을 게워내기도 했다. 열이 심하게 오르는 날은, 잠을 자다 깨어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자지러지게 울기도 했다.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정제하여 표현할 수 없는, 작은 짐승 같은 첫째 아이는 힘듦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했다. 



 이 모든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부모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며 품에 안겨 머리를 기댈 때면, 가슴이 먹먹하고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아직 ‘아파요’ 말할 수 없는 아이의 축 늘어진 모습을 보며, 열감기에 힘들어하는 아이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 아이를 돌보며 나도 기운이 빠지고, 내내 축 쳐지기 일쑤였다. 



통증,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단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지금은 ‘고전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꽤 철이 지난 드라마, <다모>에서 아직도 회자되는 명대사다. 여러 방면으로 패러디가 많이 됐지만, 실제 드라마에선 어깨의 상처로 힘겨워하는 채윤을 보며 황보 종사관이 절절하게 뱉는 대사다. 사랑하는 이의 상처가, 자신에게 똑같이 아프다는 이제는 좀, 진부한 클리셰이긴 하지만.


 헌데, 저 말이 빈말은 아니다. 인간은 실제 고통을 경험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를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등장인물이 사고를 당해 큰 상처를 입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면, 그의 상처에 자신도 모르게 내 몸의 같은 부위가 저릿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에 상처 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상처가 실제 있어야 통증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하자면, 통증은 외부의 상처에서 뇌로 이어지는 신경체계를 통해 나타난다. 여기서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관여하여, 개체가 통증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만약, 어떤 원인에 의해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체계의 변화나 혼란이 일어난다면 상처가 없이도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마음의 병에서 몸의 이상 감각, 통증 등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접하는 이는, 거울 통증(mirror pain)이라 불리는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상처입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자신의 뇌에서도 통증을 일으키는 부위가 활성화되고 신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타인의 고통이 전달된다. 아니, 그저 전달될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결을 느끼게 된다.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는 말에는 마음과 마음, 뇌와 뇌의 연결이 숨어있는 것이다. 2017년 영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4명 중 1명은 이 거울 통증을 경험한다고 발표했다 하니, 그야말로 인간은 통증에도 공감하는 존재다. 


공감이 고통을 덜어준다


 고통에 공감이 얽히면 그 힘은 더욱 커진다. 물론, 타인에게 과도하게 공감한다면 거울 통증의 정도가 더욱 증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대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그 통증을 덜어줄 수도 있다


 최근 <Scientific report>에는 재미있는 연구가 발표됐다. 22쌍의 커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아픈 애인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뇌파의 동조가 일어나고, 상대의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통받는 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공감을 표현하는 원초적 행동이다. 아마, 자신이 힘들었던 일을 친구에게 털어놓고 위로를 받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게다. 그럴 때 친구가 어깨를 다독여주는 것이 얼마나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가. 공감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그만큼 인간에게 공감의 마음과 그 행위는 강력한 치료제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함께 나도, 아내도 돌아가며 몸살을 앓곤 한다. 우리는 누가 먼저 옮긴 거냐며 서로를 놀려댔지만, 실상은 끈끈하게 이어진 마음과 마음, 뇌와 뇌 때문이리라. 그리고 진심이 담긴 공감은 서로의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말로 전할 수 없는 아빠의 위로와 공감이 체온을 통해서나마 온전히 전달됐음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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