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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Jul 21. 2018

"엄마, 쟤는 언제 집에 가?" 첫째의 둘째 적응기

(15) 첫째와 둘째사이_엄마

 

자매의 첫 만남     

 첫째가 동생을 보러 신생아실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안에서 둘째를 수유 중이었다. 이때였다. 젖을 먹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던 둘째가, 첫째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갑자기 힘차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밖에서 “엄마, 엄마.” 하는 첫째 목소리는 들리고, 수유를 그만하기에는 너무 잘 먹기 시작한 둘째 사이에서 나는 당황했다. 언니로부터 엄마를 독점하겠다는 둘째의 본능이었을까? 우연치곤 참 재밌었다. 태중에서 첫째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왔을 둘째가 그 상황에서 별안간 엄마를 붙들어 두고자 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만남. 아직 말을 잘 못하는 17개월의 첫째라 동생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데는 미숙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첫째는 신생아실 유리벽 속의 동생을 보자 "아기!" 라고 했다. 놀라웠다. 그동안 책과 어부바 인형, 어린이집, 주변 어른들이 동생에 대해 알려줬던 걸 기억하고, 첫째가 동생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걸까. 신생아인 둘째가 옆에 있어서였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첫째는 훌쩍 자라 보였다.           



 '함께 살이'를 받아들이기 까지     

 “동생 발 만지자.” 첫째에게 동생은 신체 부위 중(얼굴, 특히 눈이 아닌) 발만 만져야 하는 것으로 애초에 가르쳤다. 첫째가 혹여나 둘째에게 해코지 할까하여 생각해둔 방법이다. 근본적인 대책이긴 어렵다. 아기 발을 만져보자고 하면, 잠깐 와서 만지고 자기 하던 일을 하러 가는 무심한 첫째. 그랬다. 이처럼 첫째는 동생을 괴롭히기는 커녕 유령처럼 여겼다없는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첫째가 둘째를 두고 엄마쟤는 자기 집에 언제 돌아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갑자기 나타나 엄마 아빠의 관심을 받고 있는 낯선 이의 방문’ 정도로 받아들이는 편이 아이에게는 우선 속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 집 첫째도 처음에는 동생을 그리 느꼈던 것 같다.     


 그러던 첫째가 한 달 정도 지나자, 아침에 일어나면 둘째의 바운서 앞에 서서 아기안녕.” 하고 인사했다. 이제 이 집에서 얼마간은 함께 할 사람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그리고 또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첫째는 둘째의 바운서에 걸터앉아 모빌을 잡아당기거나, 아기체육관에 매달린 치발기를 쪽쪽 빨았다. 뿐만 아니라, 엄마가 장난치는 걸 바라봐주길 기다렸다가, 눈이 마주치면 나보란 듯 깔깔거리기 까지 했다. 아직은 둘째가 첫째의 물건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는 시기는 아니다. 그래서 첫째의 텃새가 이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집집마다 큰 아이의 월령에 따라, 둘째를 맞이하는 방식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둘째의 등장은 첫째에게 꽤나 큰 충격과 상처일 테다. 첫째에게서 둘째의 등장은 ‘본처가 있는 집에 남편이 첩을 데려오는 것과 같다’는 비유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둘째가 울면, 본능적으로 첫째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둘째에게는 미안하지만) 둘째의 우는 소리가 보다 요란해지면, 첫째가 먼저 “아기 아기” 라고 나를 잡아끈다. “그래. 아기가 울지? 그러니 엄마가 동생한테 가봐도 될까?” 하고 첫째에게 허락을 얻는 모양새를 갖춘다. 그러다보니 둘째가 울어도 곧장 달려가지 못하는 때가 잦다.     


 그렇다. 둘째 육아를 하면서 달라진 점은, ‘조금 울 땐 지켜본다’는 점이다. 사실 남편은 아이가 우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한다. 우는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지만, ‘아이의 욕구에 제때 대처해주지 못하면 아이의 성격형성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다’라는 정신과 전문의다운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다. 일단 혼자 둘 육아를 할 때는, 아이들이 운다고, 원하는 것을 즉각 해결해 줄 수 없다. 또, 아이가 왜 우는지 지켜보는 관찰 후 개입’이 아이의 욕구를 온전히 해소시켜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가 곧장 해결해주지 못 할 때, 조금은 기다려줄 수 있는 아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별나고 예민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 소변 후 즉시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먹다 흘렸을 때 곧장 닦아주는 게 습관이 된 아이들이 단체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들었다. 자신에게 엄격하다보니, 먹다 흘리느니 차라리 거부하는 등 부적응 하는 경우가 생기나 보다.      


 사실 ‘방치’와 ‘관찰 후 개입’은 한 끗 차이일 수 있다. 둘 육아의 관건은 그래서아이를 방치하지 않되아이에게 함께 살이의 즐거움이며 인내와 관용의 가치를 느끼게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려면 '나만 챙겨주던 엄마가나 아닌 더 위급한 누군가를 먼저 돕도록 기다려주는 것의 가치'를 아이가 받아들이는 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잘 넘겼을 때, 함께 안도하고, 기뻐하는 것. 그게 ‘함께 살이의 즐거움’이라는 사실까지 아이가 알면 좋겠다. 사실 ‘함께 살이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부부가 앞으로도 많이 고민해 가야할 것이다. ‘재밌게, 즐겁게’의 대목은 언제나 우리가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추구해야하는 경지이지만, 쉽지 않기 때문에.          



다시엄마 앓이     

    

 아빠를 유독 좋아해서, 엄마보다는 “아빠, 아빠” 소리가 늘 입에 붙은 첫째였다. 더구나 둘째를 모유 수유 하다보니, 자연히 나는 둘째를, 남편은 첫째와의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첫째는 아빠를 독점해서 좋은 한편엄마를 둘째에게 빼앗긴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첫째는 잠들기 전이나, 잠에서 깨어나 울 때면, 늘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자기 곁에 있는지 확인하고, 엄마가 부재 하면 서운해 했다. 새벽녘에는 엄마가 거실에서 둘째를 젖 먹이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서다. 옆집 46개월 된 아이는 동생에 대해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동생이 없어져 버리면 좋겠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발레를 하고 있어도, 동생 생각을 하면 화가 나.” 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첫째도 구체적으로 말은 못 해도 비슷한 마음이 아닐었을까 생각하니 안 된 마음이 들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두 달쯤 지나서였다. 첫째가 등원 때마다 어린이집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 적응 기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엄마와 떨어지기를 잘 하던 첫째였는데, 갑자기 엄마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였다. 등원할 때, 엄마와 동생이 같이 집을 나서긴 했는데, 엄마와 동생은 집으로 돌아가고, 첫째 혼자만 어린이집에 남겨진다고 생각하니 쓸쓸해진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등원 때마다 눈물로 짠한 이별을 해야 했다. 아이는 만들기를 하다가도,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 눈물이 나와 선생님에게 매달려 울다 잠들었단다. 처음에는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린이집 앞을 서성이다 오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금방 까먹는 지 알고나서는 그러지 않는다. 어린이집 문이 닫히면, 아이가 다시 활짝 웃고 놀이에 푹 빠져 재밌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 미안해 하기보다, 첫째와 나에게 주어진 순간순간 즐거운 관계 맺기를 하면 된다. 



지금부터 쭉 함께 살아갈 '친구'   

 이제는 기분이 좋을 때면 첫째 스스로 동생 발을 만지러 온다때다 싶어 나는 첫째에게 이해시키기를 시도한다. “00야, 동생은 걸을 수가 없어. 그리고 00처럼 엄마, 엄마 하고 부를 수도 없단다. 그래서 엄마가 도와줘야 하는 거야. 00는 엄마랑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와서 이렇게 안길 수도 있잖아. 그러니, 동생을 좀 더 도와주자 우리. 엄마가 동생 젖을 먹이고는 있지만, 언제든 00가 책을 가져오면 읽어줄게. 00가 좋아하는 <라프의 여행>책 가져올래? 지금 읽자.”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하지만엄마가 이해를 구하는 얼굴로 말을 골라 다정하게 자신에게 설명했던 언어의 온도가 아이를 만족케 했으리라 생각해본다아직은 친구들과의 상호작용도 서툰 20개월 첫째. 하지만 나중에 둘은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것임을 믿는다. “00야, 다음에는 동생이랑 좀 친해져서 와.” 둘째의 50일 기념 스튜디오 촬영에서 작가님이 첫째의 무심한 얼굴에 대고 했던 말. 


 부부는 첫째에게 동생을 친절히 설명해나가야 할 것이다둘은 '남편을 두고 경쟁하는 본처와 첩의 관계가 아니라가장 좋은 친구가 될 사이라, 지금부터 쭉 우리 집에서 함께 사는 것' 이라고, 부부는 느리고 다정한 언어로 자주 일러주어야 할 것이다          



더 사랑하기 위한 시간

 첫째의 일과 중 엄마와 반드시 함께 하는 일을 정해 두었다. 첫째가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으로 가득해 울다 잠든 날은, 대부분 새벽에 기분 나쁜 채로 깨어난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엄마가 늘 가까이에 있다’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경험과 추억을 평소에 많이 쌓아주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되도록 엄마와 하원하기하원 후 엄마와 어린이집 일과에 대해 이야기하며 목욕하기엉엉 울며 삐진 마음으로 잠들지 않게 하기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감사기도하며 잠들게 하기아무리 바빠도 하루가 끝나기 전에 엄마 육성으로 책 읽어주기 등이다물론 아빠 몫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첫째가 둘째에게 엄마를 영영 빼앗겨버린 것 같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므로, 엄마가 더욱 노력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둘째에게 젖을 줄 때에도, 몸은 둘째와 함께 있지만, 첫째와 충분히 공감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려 한다. 첫째가 책을 들고 다가오거나, 하고있는 놀이가 있다면 그 내용에 대해 되도록 수다스럽게 떠들어 주려 한다. ‘엄마가 결코 둘째만 돌보고 있는 게 아니고, 너를 끊임없이 사랑하고 어루만지고 있단다.’ 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첫째를 생각하며, 또 둘째를 생각하며, 엄마로서 오만가지 감정을 마주한다. 이 글을 쓰며,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나와 첫째를 생각해 본다.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나누지 못해 목말라 하는 첫째와 나. 그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이 아이러니에 웃음이 난다. 보고있어도 보고싶은 격이다. 이 고민이, 이 사투 자체가 실은 큰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곤두서있는 셈이다. 나중에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각자살이’로 바빠져, 서로에게 무심해지는 시간이 온다면, 이때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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