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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Zorba Aug 05. 2018

"우리 엄마 아빠 뺏어가지 마!"

(16) 첫째와 둘째 사이_아빠


엄마, 엄마, 엄마...잉...아빠, 아빠, 아빠…


둘째의 백일 날이었다. 세심하게 신경 써 상차림을 마련했던 첫째 때와 달리, 두 번째 맞이하는 아이의 백일잔치는 비교적 소박하고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다. 분주했던 하루가 끝날 때 즈음 첫째가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보다 피곤했는지 빨리 곯아떨어진 아이의 쌔근거리는 소리를 확인하곤, 안심하고 둘째를 얼르며 하루를 마무리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첫째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뒤척이다 어디 머리라도 부딪혔나 놀라 아내와 달려가 보니,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첫째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다 우리에게 안겨 온다.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반쯤 잠에서 깨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찾던 첫째를 안아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니, 그제야 훌쩍이며 다시 잠에 천천히 빠져들었다. 휴우-.


최근 몇 차례 같은 일이 있었다. 아내와 하루하루를 되짚어 보니, 범인은 바로 ‘둘째’였다. 대개는 충분히 첫째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 날, 둘째가 아프거나 해서 첫째에게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기울였던 날에 사건(?)이 발생했다. 오늘은 둘째의 백일 상을 바삐 차리며 놀아달라고 다가오는 첫째를 방에서 내보내고, 혼자 놀게 했던 것이 바로 원인이었다. 어쩐지, 아직 자기 의사를 다 표현하지 못하는 첫째의 표정이 억울해 보이더라니.


처음 둘째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날, 첫째의 반응은 ‘완전 무시’였다. 마치 처음 집에 온 가구를 쳐다보듯, 잠시 관심을 가지다 자신의 장난감이나 책에 집중했었다.


“아기 발 좀 만져봐, 동생이야. 동생.응?”


첫째는 말없이 스윽 아기를 보곤, 천천히 다가와 시크하게 둘째의 발을 ‘탁’ 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아기에게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의외의 반응에 부부는 조금 당황했다. 부부가 상상했던, 아이가 활짝 웃으며 둘째를 바라보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부부의 걱정은 기우였다. 둘째의 침대, 기저귀가 집안을 조금씩 차지하면서 둘째의 공간이 점차 넓어졌다. 그러면서 첫째에게도 둘째의 존재감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나 보다. 먼저 첫째의 떼가 늘기 시작했다. 부부 둘 다 둘째의 일에 매달려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바짓가랑이를 끌고 장난감 더미로 데려가거나,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며 내밀었다. 둘째가 잠들 때면, 아기가 누워 있던 바운서 담요를 끌어 내리곤 마치 ‘왕좌를 재탈환한 왕’처럼 부부를 바라보고 배시시 웃곤 했다. 아이의 귀여운 질투가 이해되면서도, 내심 안쓰러워 보였다. 아마도 잠결에 울던 첫째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엄마 아빠 뺏어가지 마!


가 아니었을까?






정신분석 이론(psychoanalysis theory)에서 형제간 경쟁심리 (sibling rivalry)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주제 중 하나다. 한 부모 아래서 났지만, 내 영역과 가진 것을 앗아가는 최초의 적. 그것이 바로 형제의 존재감이다.


형제간 경쟁심리는 아이의 성격 형성에도 중심 축으로 작용한다. 성격이라 함은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는 외동아이와, 부모의 사랑을 타인과 나누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제간, 그 ‘one of them’이 가지는 감각은 분명 다를 것이다. 관계 안에서 끊임없는 질투와 다툼,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경험하며 자라난 아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경쟁심리가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경우엔 어린 시절을 넘어 평생을 관통하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일화처럼, 비극으로 끝나는 형제애를 다룬 고전 명작이 수없이 많은 걸 보면 자녀들 간 관계에 대한 고민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형제간 경쟁심리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여러 발달적, 생물학적 관점이 존재하지만,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뺏느냐 뺏기느냐’의 문제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동물에선 출생과 동시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닐 터. 움직이지 못하는 신생아는 배고픔이나 두려움, 불편함을 울음으로 표현해 생존본능을 드러내고, 양육자의 관심을 유도한다. 인간의 아이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수년간의 보살핌 후에야 비로소 두 다리로 서고, 생존을 위한 행동을 스스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생존의 감각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또, 인간의 생존에는 다른 동물들처럼 어미의 젖, 식량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은 애정과 관심, 사랑과 같은 무형의 것들이기 때문에, 형제간 경쟁심리는 그저 생존을 위한 경쟁을 넘어 좀 더 복잡하다.


형제간 경쟁심리는 첫째와 둘째에게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두 아이 중 첫째는 형제간 경쟁에서 많은 것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좀 과장하자면, 자신을 둘러싼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독한 왕과 같다. 자신이 짧은 기간 쌓아 온 왕국이 해체되고 영역이 점차 좁아지는 느낌은 생존에의 불안을 자극하고, 형제에 대한 질투와 적개심을 자아낸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은 부모도 당황할 정도의 행동을 부추기기도 한다. 첫째가 둘째 아이 눈을 찌르더라, 안 보는 사이에 슬쩍 둘째 아이 배를 밟고 지나가더라 하는 육아판 도시 괴담(?)이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둘째는 형제간 경쟁에서 공격자의 입장에 가깝다. 이미 가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첫째의 자리는 생존을 위해 꼭 빼앗아야 하는 것이 된다. 더 어린 자신의 위치를 무기 삼아 애교를 부리고 끊임없이 눈치를 보며 자신과 첫째를 비교한다. 둘째는 눈칫밥을 먹고 자라는 위치이면서, 이미 정해진 형제간 위계질서로 인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가여운 처지일 수밖에 없으니 더욱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또, 우리 아이들 모두 이 전형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다.








가족이 하나 더 늘면서 기쁨도 커졌지만, 첫째의 질투 아닌 질투와 함께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관계와 형제간 경쟁심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형제간 경쟁심리를 피할 순 없다. 이는 인간적, 아니 동물적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부모의 사랑과 관 서로가 빼앗아야 할 것이 아닌,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두 아이 육아는 여전히 힘들지만, 우리 부부에겐 편파적인 육아가 아닌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공평하고 균형 잡힌 육아를 하는 것이 중요한 방향이 되었다. 그리고, 육아의 결 또한 하나를 키울 때보다 더 계획적이어야 할 것이다.


한창 뛰노는 것을 좋아하고,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통에 잠시라도 마음 놓을 수 없는 첫째는 주로 아빠가 담당하게 되었다. 갓 백일을 넘긴 갓난아기는 엄마의 손길이 더 필요하기에 엄마 담당이 되었다. 분주한 육아 시간이 지나고 첫째가 잠들 때면 부부가 함께 모여 둘째와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주고, 더 안아주려 한다. 둘째가 잠시 잠들 때면 우리 부부는 첫째에게 가 조금은 오버하며 안고 쓰다듬으며, 책을 읽어주고 함께 놀아준다. 두 아이 모두 깨어 있을 때도 한 아이에게 쏠리는 관심을 다른 한 쪽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느낄 박탈감에도 관심을 가지려 한다. 사랑과 관심을 물건 나누듯 완전히 분배하기란 분명 어렵지만,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균형감을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난 언니가 있었음 했어. 친구가 언니들과 함께 여행가고, 쇼핑가고, 고민을 나누고 하는 게, 엄마와 이야기 하는 거랑은 좀 다르더라. 부러웠어.


외동딸인 아내는 부모님의 변함없는 애정에도 때로는 외로웠다고 한다. 첫째에게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늘 했던 것도 아내였다. 요즘처럼 아이 둘을 가지는 것이 용기로 여겨지는 때, 그 용감한 결단을 내린 것도 다름 아닌 아내였다.




이제야 아이 둘 육아가 닻을 올렸다. 형제간 경쟁심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첫째는 불안과 질투, 박탈감에서 양보와 인내, 기다림의 가치를 배우게 될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관계 안에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현 상황에 공존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가 둘 사이에서 함께 하겠지만. 뭐, 좋은 것만 취하고 살지 못하는 것도 인생 아닌가. 둘 모두 애증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상대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감각을 배우게 되길 바라본다. 일종의 작은 사회화(socialization)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와 함께하는 느낌, 그리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감각을 기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바탕을 제공해주는 것이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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